무향실(Acoustic Anechoic Chamber)

 

 만일, 바람없고 조용한 날에 교회의 높은 첨탑 위에 올라간다면 귀가 먹먹해질 것이다. 너무나 조용하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소리를 지른다면 자신의 소리가 이렇게 작았었나? 하고 반문할 것이다. 그가 소리를 아무리 크게 질러도 그의 귀로 직접 전해진 소리만 들을 뿐, 다른 방향으로 전파하는 소리는 허공으로 날리어 갈 것이므로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음원에서 발생한 소리가 반사되서 되돌아오지 않는 공간을 음향학적으로는 자유음장(自由音場; Free sound field)이라고 한다.

 

 자유음장에 놓인 점음원(point sound source)에서 발생한 소리는 구면파(spherical wave)로 공간을 전파하기 때문에 음원으로부터 두 배되는 위치의 음압레벨(SPL;sound pressure level)은 항상 6dB이 감소한다. 이런 특성을 이용하여 자유음장을 측정하고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이런 자유음장을 인위적으로 만든 공간을 무향실(無響室; Acoustic anechoic chamber)이라 한다. 무향실은 말 그대로 반사되는 소리가 없는 방이므로 벽이나 천정, 바닥으로 진행한 소리는 모두 흡수되어야 하며, 벽을통해 방으로 들어오는 소리도 없어야 한다.  무향실은 미국의 음향학자인 Leo Beranek(1914-2016)이 2차 대전중에 항공소음을 연구하기 위해 처음으로 창안했다.

 

 무향실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주변의 외부 소음을 차단해야 하기 때문에 땅속에 만드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땅속에도 많은 진동이 전파되고 있기 때문에 바닥에 방진고무나 스프링을 놓아 방을 공간에 띄워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진동이 무향실에 전달되지 않는다. 무향실내로 전달된 주변소음을 배경소음 또는 암소음이라 하는데 보통은 배경소음이 10내지 20dBA이면 좋은 무향실이다. 그런데 2015년에 완성된 Microsoft사의 최신 무향실의 배경소음은 -20.6dBA로써 지구상에서 가장 조용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암소음이 적은 보통의 무향실일지라도 처음 무향실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극도의 조용함이 주는 기묘한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그림1] a: 무향실 내부   b: 다양한 흡음쐐기   c: 흡음쐐기의 흡음과정

 

 무향실의 벽은 흡음쐐기(wedge)로 처리한다. 흡음쐐기는 홈크기가 4내지 8μm인 폴리우레탄(poly urethane)이나 유리섬유(glass wool) 등으로 만드는데 [그림1]의 흡음쐐기에서 보는 바와같이 입사한 소리가 다중반사를 반복하면서 흡수되도록 한다. 결국은 소리를 전달하는 공기분자의 진동에너지가 쐐기의 작은 틈속에서 점성(viscosity)에 의해 열(熱;heat)로 전환되는 과정이 흡음과정이다. 따라서 다중 반사를 하는 횟 수가 많을수록 흡음이 잘 되므로 당연히 반사되는 소리가 적다. 이런 이유로 흡음쐐기를 벽과 천정, 바닥에 놓아 무향실을 만든다. 그런데 쐐기에 의한 흡음의 정도는 주파수에 따라 다르다. 즉, 쐐기의 길이가 음파의 파장(음속/주파수)의 1/4길이 보다 커야만 흡음효과가 좋고, 이 보다 작으면 흡음율이 떨어진다. 따라서 쐐기의 길이 = 1/4(파장) = 1/4(음속/주파수)에 해당하는 주파수를 일종의 차단주파수(遮斷周波數; cut-off frequency)라고 부른다. 정리하면, 무향실마다 쐐기의 길이에 따라 차단주파수가 주어지는데 차단주파수 이상의 주파수음은 99% 이상을 흡음 하지만 차단주파수 이하의 주파수음은 흡음율이 0.99 이하라는 의미가 된다. 보통의 무향실 차단주파수에서 0.99의 흡음율을 기준으로 적용할 뿐이고, 무향실의 용도에따라 이 기준은 서로 다르게 주어진다.

 

 벽과 천정, 바닥까지 흡음쐐기로 처리한 완전무향실은 음향학적인 기초연구 및 음향기기의 특성시험, 음원의 다양한 특성 연구 등에 사용되어지고, 중량이 큰 자동차, 비행기 또는 가전제품의 소음연구 및 측정시에는 바닥만 음향처리하지 않은 반무향실(半無響室; semi-anechoic chamber)을 활용한다. 특히, 자동차회사의 경우에 다양한 음향연구와 소음 측정을 해야하기 때문에 대단히 큰 공간을 갖는 무향실을 갖추고 있다. 미국의 GM사만해도 대단위 무향실을 15개나 갖고 있다.

 

 

잔향실(Reverberation Room)

 

  마이크 보정이나 흡음재의 흡음율을 측정할 경우는 잔향실(Reverberation room=Echo chamber)을 활용한다. 즉, 전 가청영역의 주파수를 갖는 소리가 다양한 방향으로 입사할 경우의 마이크 보정과 흡음재의 흡음율을 측정해야 하기 때문에 잔향실이 필요한 것이다. 잔향실은 무향실과는 반대로 벽면과 천정, 바닥을 매우 단단하고 무거운 금속판으로 마감처리를 하는 방으로써 소리가 벽면에서 흡수되지 않고 오히려 모두 반사 되도록 만든다.

 

                  [그림2] a: 잔향실 내부(www.the-ear.net),   b: Sound diffuser,   c: 디퓨져 처리된 벽

 

  잔향실은 모든 소리를 반사하기 때문에 반사된 소리가 공간에 고르게 분포하게 된다. 이처럼 소리에너지가 공간에 고르게 분포한 음장을 확산음장(擴散音場; Diffuse sound field)이라고 한다. 단, 잔향실을 만들 경우에 벽면을 주의해서 배치해야 한다. [그림2]의 a에서 보는 바와같이 벽면이 각 각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정방형이나 장방형이 아닐 필요는 없지만 면과 면이 나란하게 마주보는 경우는 필히 피해야 한다. 서로 나란하게 마주보는 면이 있게되면 정상파(정지파=정재파; standing wave)가 만들어지고, 정상파가 만들어지면 공간상에 소리가 강하고 약한 부분이 만들어지므로 확산음장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잔향실로 외부 소음이 입력되는 것도 막아야 한다. 따라서 무향실과 같이 땅의 진동이 전달되지 않도록 방진고무나 스프링을 이용해서 잔향실을 띄워야 하며, 외부소음 차단벽과 천정 및 바닥을 두껍고 무겁게 만들어 암소음을 줄여야 한다. 

 

 새로지은 집에 가구가 들어가기 전에 방에서 이야기를 하면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하면서 대화음의 명료도가 떨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데 이런 현상이 바로 마주보는 벽 사이에서 반사파들이 정상파를 만들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 방에 가구를 들여 놓으면 정상파가 만들어지지 않고, 만들어질지라도 미미하기 때문에 정상파 현상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공간이 큰 강당같은 곳은 특별히 가구를 채우기도 어렵고, 벽을 서로 마주보지 않도록 만들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음향적으로 취약하다. 이런 공간을 건축할 경우에 정상파 형성을 방지하기 위해서 각 변의 길이비가 정수비가 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도 있지만 별로 권장할 방법은 못된다. 오히려 강당이나 큰 식당같은 곳에서는 [그림2]의 b, c에서 보는 바와같이 목재나 프라스틱으로 만든 디퓨져(diffuser)를 놓던가, 아니면 아예 목재나 시멘트로 벽을 디퓨져 처리하고, 천정에 물결 모양의 디퓨져를 설치하여 확산음장이 만들어지도록 인테리어 하는 것이 좋다.  

 

 

                    ------------------- by  Dajae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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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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