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숫자와 예술

1)숫자 1 2)숫자 2 3)숫자 3 4)숫자 4 5)숫자 5 6)숫자 6 7)숫자 7 8)숫자 8 9)숫자 9 10)숫자 0 11)미술 속의 수 12)음악 속의 수

 

 

1) 숫자 1 - 숫자 1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는 것의 추상적인 양을 나타내는 첫째 자연수이다. 따라서 일단 하나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명확한 개념이 설정되어야 하며, 이 개념에 의하여 구별되는 대상의 범주가 일종의 집합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1은 수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주춧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수학적으로 1은 0 과 함께 어떤 수도 표현할 수 있다. 즉, 2진법이라 부르는 수체계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에 컴퓨터의 논리체계가 0과 1로 다루어 질 수 있으며 모든 연산이 가능한 것이다.

세상에 하나만 존재한다는 것은 유일한 것이다. 석가모니가 태어나자 마자 7걸음을 걸은 후 '하늘과 하늘아래 오로지 나만이 홀로 존재한다.'고 선언한 것이나, 기독교적 유일신 사상은 모두 하나의 세계를 의미한다. 하나의 태양이 절대권력을 상징하듯 유일성은 절대전능함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으며, 권위의 자연발생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간적인 측면에서 하나는 외로움이다.

다수 중의 하나는 첫째자리를 의미한다. 즉, 1등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목표를 세우고 돌진하고자 하는 자리는 1등의 자리다. 그러나 1등이 아닌 다수가 있기 때문에 1등이 있는 것이다. 많아서도 1등일 수 있으며 적어서도 1등일 수 있고, 잘나서도 1등 못나서도 1등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1등과 꼴찌의 차이는 보는 관점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부잘하기 1등은 공부 못하기 꼴찌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노력을 해서 얻는 것인가 아니면 노력하지 않고 얻는 것인가를 되짚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한참 경제 발전을 가속화 시키던 1970년대에는 동양 최대라는 수식어가 남발 되기도 했다. 특별한 기준도 없이 규모를 과장 발표하여 통치자의 업적을 강조하던 시절이었다. 아직도 그런 유치한 단계에서 정치를 하는 경우가 종종 보이기는 한다. 결국은 1등병 환자인 셈이다. 불요불급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남과 비교하여 우위를 논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1등을 따지다 보면 서로가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1등을 차지하는 것중에서 첫째는 음성을 가장 과학적으로 표기할 수 있는 한글을 꼽을 수 있다. 문자를 만든 시기와 만든 사람들과 문자를 만든 이유가 정확하게 알려진 문자는 오로지 한글밖에 없다.

인쇄문화의 선구자적 위치도 1등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국사의 석가탑을 보수하던 도중에 발견된 세계 최초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그것이며, 1234년에 만들었다는 금속활자가 그것이다. 심지어 조선의 태종은 천하의 서적을 모두 인쇄하기 위한 야심하에 계미자를 주조하고 이어 조선시대를 통하여 25회의 청동금속활자를 주조한 사실은 높은 문화정신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글자를 하나씩 주조하여 활판에 맞추어 인쇄하고 그 활자를 다른 페이지에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금속활자는 대단한 것이다. 이미 송나라의 필승이란 사람이 11세기에 도활자를 만들었으나 실패하였다. 보통의 수성먹이 활자의 표면에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는 금속활자에 이어 유성먹을 개발하였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변국에 잘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안타깝다. 문화는 주변국에 전파시켜야만 가치를 인정받고 종주국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음에도 우리는 1등의 아량을 베풀지 못하여 금속활자와 도공을 임진왜란 때 잃게 되었다.

우리의 조상들이 1등을 차지한 것은 그외에도 많다. 봉덕사의 신종이나 고려청자, 측우기, 당시에 가장 정확한 시계였던 혼천의, 유럽과 아프리카, 극동을 정확히 표현한 1402년의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지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 등이 1등감 이다.

1993년, 현재 1등을 차지하고 있는 사항들은 꼭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교통사고 사망률이 세계 1위이며 간암과 결핵사망률이 1위이고 기형아 출산율 세계 1위, 40대 사망률에서 세계 1등을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부끄러운 1등은 책 안읽기 1등일 것이다. 교육열은 1등인데 학구열과 독서율은 오히려 꼴찌를 하고 있으니 가슴 아픈 일이다. 현재 좋은 쪽으로는 세계 1위의 조선제조국이며 반도체 기억소자 생산국인 것이다. 또한, 기능올림픽 최다 우승국, 양궁의 신기록 국가이고 세계의 4개 기전을 모두 휩쓰는 바둑의 1등국이다. 한국인은 2가 1되는 염원 즉, 통일기원에서도 세계에서 1등을 하고 있다.

 

2) 숫자 2 - 퀸즈랜드의 원주민이나 아프리카의 피그미족들은 2진법의 수개념을 일상생활에 이용하고 있다. 진법중에서 가장 낮은 진법인 2진법에 숫자 2는 들어가지 않고 0과 1로 구성된다.

2는 음의 수로서 죽은자에게는 두번의 절을 한다. 즉, 죽음의 세계는 살아있는 세계에 대한 음의 세계이기 때문이며, 여자가 혼례식에서 남자에게 절을 2번 하는데 이도 스스로를 음이라 선언하는 것과 같다. 짝수는 음이다.

2등은 언제나 아쉬움의 자리이며 갈등의 순서이다. 1등의 그늘 아래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빛나지 않는 것 중에서 1등이기는 하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특히 선거에서 2등과 1등은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둘은 경쟁심을 일으키고 발전의 동기를 심어주는 최소의 수라고 할 것이다. 또한, 둘은 외로움을 덜어주고 고통을 반감 시키며 기쁨을 증폭 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러기에 남과 여가 하나의 부부를 이루어 가정을 꾸미고 살아 간다. 적어도 둘이서 합심협력할 줄 알아야 여럿이도 뭉칠 줄 알기 때문에 둘은 사회의 주춧돌이 된다고 할 수 있으며, 만남을 이룰 수 있는 수로써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둘은 불안정하다. 큰 가람의 앞에는 일주문이 있으나 사실은 2개의 기둥을 갖고 있어 2주문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지만 서있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기둥수를 강조하다 보니 일주문이라 이름지워져 있다. 불가에서야 일주문을 들어서며 일심으로 부처님께 귀의 하라는 의미로 일주문을 세운다지만 일주문은 불안한 모습으로 서 있다.

우주의 생성원리도 음과 양으로 설명한다. 결국 2라는 숫자가 주어져야만 대칭성이 살아난다 할 것이다. 해와 달이 그렇고 밤과 낮, 남과 여, 하늘과 땅, 밝음과 어두움, 있음과 없음이 2라는 세계에서 말해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로서 만들 수 없는 세상을 둘이서 만들 수 있고, 젓가락 처럼 하나로서 수행할 수 없는 기능을 둘이서는 수행할 수 있다. 눈과 귀가 2개씩 있기 때문에 눈으로 거리를 잴 수 있으며, 귀로 소리가 나는 방향을 알 수 있는 것이다.

1993년, 우리나라는 가전제품 생산에서 세계 2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산업재해 사상자 수나 성인 흡연율(68%), 에너지 소비 증가율(매년 10%)이 세계 2위를 차지하는 강국(?) 이기도 하다.

 

3) 숫자 3 - 동양에서는 짝수를 음의 수, 홀수를 양의 수로 생각하여 홀수를 남아 선호사상과 함께 좋아하는 습관이 있다. 그 중에서 외로운 하나 보다는 약간의 여유가 있는 3을 좋아한다. 무슨일을 할 경우에 3번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3세번이라 한다든가, 인생에는 3번의 큰 기회가 온다든가, 3번을 생각하고 한마디의 말을 한다든가, 제갈량을 유비가 3고초려하는 것이라든가 셀 수 없을만큼 3이란 수치와 생활이 관련을 맺고 있다.

3은 안정된 숫자이다. 솥귀의 수가 3, 받침대를 3발이라 하여 가장 안정된 다리의 수로 보았다. 그러나 자동차는 3발이가 귀하다.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는 3발이라 불리던 트럭이 우리나라에서 운행됐었지만 안정성이 떨어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3이 안정하다는 것은 삼각형에서 볼 수 있다. 한강 철교나 파리의 에펠탑 같은 철골구조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삼각형이 기본구조를 이루고 있는 이유는 삼각형이 역학 구조에서 변형력에 가장 잘 견디고 일그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3은 하늘, 땅, 인간을 의미하는 완벽한 수로 독립선언을 한 각계의 대표수를 33으로 제한한 이유도 완벽한 성공을 바라는 숫자적 신념에서 찾을 수 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체포되던 밤에 3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정했다. 예수의 예언과 꼭 맞았던 것이다. 결국, 3이란 숫자는 확신의 수이다. 어떤 다짐을 받고자 할 경우에 사람들은 세번을 물어 대답을 들어야 믿게된다. 예전에 한밤에 누가 불러도 3번 부르는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갔다고 한다. 한번 듣고 잘못 나갔다가는 환청일 수도 있어 귀신에 놀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자가 3이 모이면 접시가 엎어졌다 제껴졌다 한다는 말이나, 눈에 어른거린다는 표현을 삼삼하다고 한다든가, 결심이 오래가지 못하는 짧은 시간을 3일로 제한하는 일들이 3과 관련이 있다. 식사를 하루에 3번 하는 것도, 과거 현재 미래로 시간이 3등분 되는것도, 부처님께 절을 3번하는 것도,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 하나라는 3위일체설이 모두 3이란 숫자로 말해진다. 결국 종교도 3이란 숫자와 많은 관련을 갖고 있다. 불교에서 3귀의, 3업, 3바라밀, 3불토 등이나 3분의 부처님이 불단에 모셔져 있는 경우가 그것이며 힌두교의 3신일체도 그 예이다. 기독교는 특히 3과 관련이 많다. 3명의 동방박사의 예방을 받은 아기예수는 3개의 보물로 축원을 받고 태어났지만 33세에 죽었고 3일만에 부활하였다.

 

4) 숫자 4 -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인원수가 13이라는 이유로 서양인들은 13을 마의 수라 하여 기피하고, 이탈리아에서는 17의 라틴어를 거꾸로 읽으면 '나는 죽는다.'란 뜻이 되므로 싫어 하며, 일본인들은 고(苦)와 발음이 같은 9를 싫어 하지만 4는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수이다. 한자의 '죽을 사'자가 공교롭게도 숫자 4와 발음이 같은 관계로 한국에서는 대접을 받지 못하는 숫자이다. 고층의 아파트나 건물의 4층은 어디론가 없어지고 F층이 자리잡고 있다.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있고, 얼마나 멀리하고 싶은 것이기에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우습다. 영어로 층수를 표기하고, 기피하고 싶은 수라면 차라리 숫자 4를 사로 읽지말고 다른 발음으로 읽는 것이 더 좋을것이다. 일,이,삼,'하',오,륙,칠 ---

이같은 발상은 이미 불교에도 있다. 불교에서 최고 이상인 깨달음의 지혜나 그 수도과정을 산스크리트어로 보디(bodhi)라 하는데 이를 한자로 음역하면 보제(菩提)가 된다. 그러나 발음상 여근을 생각케 하므로 수도에 지장이 있을까봐 보리로 고쳐서 발음한다. 보리심, 보리수 등이 그 예이다.

어쨋든 4가 천대만 받지는 않았다. 부모님의 회갑을 맞아 자식들이 큰절을 올릴 때 4번의 절을 하고, 신하들이 임금의 성은에 감사하는 절을 올릴 때나 사약을 받고 절을 할 때 북향4배를 했는데 이는 4번이 주는 무게를 중히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절을 4번 반복하는 시간은 감사의 속말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윷가락은 4개이며, 자연에는 동서남북의 4방위가 있고, 춘하추동의 4계절이 있고, 인체에는 4지가 있다. 중국 의학서인 황제내경에 의하면 인체에 4지가 있고 4계절이 있는 이유는 자연과 인체가 같은 원리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4개의 방위는 조상들의 사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늘을 관장하는 동쪽의 청룡, 서쪽하늘의 백룡, 남쪽의 주룡, 북쪽하늘에 산다는 흑룡에 대한 생각이 그렇고, 고려 태조 왕건의 묘나 우현리의 대묘에 나타나는 동쪽벽의 청룡, 서쪽벽의 백호, 남쪽의 주작, 북쪽벽에 현무를 그린 4신도가 4방위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용이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발가락이 주로 4개인 것도 하나의 특징이며, 임금의 곤룡포가 하늘의 중앙을 관장하는 황룡을 상징하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승용차의 바퀴수가 4인 것은 회전시 안정감을 주는 최소의 수이기 때문이다. 3은 정지상태에서 안정을 주지만 4는 운동상태에서 안정을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동물들의 다리수도 보통 4인 것이다.

1993년, 세계에는 4마리의 용이 비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태극기에는 중앙의 태극을 중심으로 4괘가 있고 우리는 4강국에 둘러 쌓여 있다.

 

5) 숫자 5 - 한쪽 손의 손가락이 5개라 5는 숫자표기의 기본단위 즉, 5진법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일리아드를 쓴 호메로스 시대의 그리이스인이나 이탈리아의 중부에 살았던 고대 에트루리아 사람들에게서 유래한 로마숫자가 5진법의 예이다. 로마 숫자는 V(5) 와 X(10)을 기준으로 더하기와 빼기를 적용하여 수를 표기하고 있다.

숫자 5는 서양에서 신비로운 숫자로 다루어져 왔다. 종교적이고 비밀스러운 피타고라스 학파에서는 어린이들이 흔히 그리는 5각뿔 별을 문장으로 사용하였고 5개의 정다면체를 발견하였다. 플라톤은 이중에서 정12면체를 버리고 나머지 4개의 정다면체로 흙,물,불,공기의 4원소를 설명하려고 노력했으며 케플러는 한때 5개의 정다면체를 이용하여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의 궤도를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이런 관점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있었는데 달 너머 천상의 세계에는 제5의 원소인 에테르가 충만해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동양에서는 음양5행설로 우주의 생성, 변화를 설명하고자 했다. 회남자에 나오는 음양의 이론은 흥망성쇠를 반복할 뿐 서로 대립관계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하나가 쇠하면 한쪽이 성하고 한쪽이 성하면 다른쪽이 쇠하는 관계로서 우열을 주지는 않고 있다. 이점이 서양의 신과 악마의 대립투쟁의 관계와는 판이하게 구별되는 동양적 사상의 백미이다. 5행의 입장도 음양의 관계와 유사하게 상생과 상극의 관계로 변화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을 뿐, 목,화,토,금,수 중에서 어느것이 우위이고 어느것이 하위인가는 구별되지 않으며, 인간도 만물 중의 하나로서 5행의 변화원리에 따라 동화되어 살아가는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결국, 인간이 자연의 우위를 차지한다든가 하는식의 서구적 개념은 없다. 따라서 한국식 정원이 산자락으로 흘러내린 자투리를 그대로 집안에 끌어들여 자연미를 최대한 살리고 선비들이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긴것도 따지고 보면, 동양적인 음양5행설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5행의 원리는 5장육부의 5장, 찬란한 색을 표현하는 5색을 설명하는데 이용되고, 심지어 음악의 기본을 5음으로 설정하여 현재 국악이 5음음계에 바탕을 두도록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음력 5월 5일 단오날에 전 백성이 창포물에 머리 감는 날이었으며, 지금은 양력 5월5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여 미래의 주인들을 기쁘게 해주고 있다.

 

6) 숫자 6 - 숫자 6은 별로 특징이 없는 수이다. 짝수라서 별로 좋아하지 않고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6의 두배수는 12 인데 수체계에서 12진법이 가장 과학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미 10진법의 체계에 길들여 있기 때문에 화투에서나 이용되고 있다. 대신 6은 확률적인 놀이에 많이 등장하는 주사위의 면의 수이다.

6은 6모방망이에서 백성에 대한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삼현6각의 수이다. 삼현은 세가지의 현악기를 뜻하는 것으로 6줄의 거문고, 12줄의 가야금, 4줄의 비파를 이르며, 6각은 북, 장구, 해금, 대금, 피리 1쌍을 일컫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6은 사6신과 생6신으로 기억되는 숫자이다.

6은 5다음에 붙어서 말해지는 경우가 많다. 5대양 6대주, 오뉴월, 오장육부 등이 그렇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던 분들은 오뉴월과 관련된 속담을 많이 읊으셨다. 특히 음력 6월은 썩은달이라 부르기도 했다. 한여름에 입맛이 떨어지면 육모초(줄기가 각이 졌기 때문인데 익모초라고도 함)의 즙을 마셨던 기억도 난다. 너무 써서 마시기는 고통스럽지만 먹고 나면 밥맛이 되살아 난다.

1993년, 우리나라는 철강생산량이 세계 6위이다.

 

7) 숫자 7 - 숫자 7은 행운의 수라하여 서양인들 까지도 좋아하는 수이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제 6일간 고된 작업을 하시고 7일째 되는날 비로소 안식을 취하셨다 한다. 여기에서 일주일이 7일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기록상으로는 바빌로니아 지방에서 일주일을 7일로 하는 습관이 있었던 것으로 말해지고 있다. 어쨋든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6일 일하고 하루 쉬는 7일 리듬에 맞추어 생활하고 있다.

무지개 색을 빨주노초파남보의 7가지 색으로 분류한 것처럼 몸단장을 호화롭게 하면 7보단장이라고 했다. 7보는 7가지 보물로써 불교의 보석을 뜻한다. 또, 7가지의 색은 다양한 색이란 의미가 있어 색이 변하는 새를 7면조라 부른다. 즉, 7개의 얼굴을 가진 새란 의미이다.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7거지악이란 말이 있었다. 지금이야 의미가 퇴색했지만 남성우월시대를 대표하는 어처구니 없는 말이다. 조선시대에 7가지 아내를 내쫒을 수 있는 이유는 부모에 대한 반항, 자식을 두지 못하는 것, 음탕한 행실, 나쁜병에 걸린 것, 시기 질투, 도둑질,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말했다.

북두7성을 별자리 이름으로는 작은곰자리라고 하지만 우리는 국자 같다고 보며, 서양인들도 실제로 큰국자로 부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같은 이름이 붙은 별자리는 북두7성인데 배들이 고팠는지 먹는것과 관련된 국자를 머리에 떠올렸던 것이다. 옛부터 등이나 배에 삼태성이나 북두7성 모양의 검은 점이 있으면 큰 인물이 될 사람으로 무시하지 않았다. 안중근의사도 등에 북두7성이 있었다 하여 어려서 이름이 응칠이 였다.

7성판을 등에 지면 죽은 몸이고, 두보는 7언 율시를 잘 읊었으며, 우리의 기본음률은 7.5조 이고, 서양 음악의 음계는 중국의 음계와 같이 7음 음계이다.

 

8) 숫자 8 - 8이란 숫자로 이름이 붙은 명소로는 남산의 8각정, 수원의 중심부에 있으며 사방팔방이 훤히 보인다 하여 이름붙여진 8달산, 대구 근교에 대사찰을 많이 거느리고 있는 8공산을 들 수 있다.

소설속에 나오는 8은 김만중님이 쓰신 구운몽의 여덟선녀를 들 수 있으며, 역사속의 8은 고조선 시대의 8조금법을 말할 수 있다. 옛부터 도둑이 없으면 법도 필요 없다고 했다. 한국가의 법이 도둑은 종살이를 시킨다든가, 살인한자는 사형에 처한다든가 하는식의 8항목이었다면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다. 현대사회는 복잡하고 다양한 범죄가 발생하기 때문에 복잡한 법을 만들어야 하고 그 방면의 전문가를 두어야 할 지경이다.

8만대장경은 고려의 목판인쇄술을 보여주는 걸작으로 불교의 8만4천가지 법문을 오자나 탈자가 한자도 없이 거제도에서 운반한 자작나무에 새겨놓은 것이다. 중생이 사는 이 세상에는 8만4천가지의 번뇌가 있기 때문에 부처께서 중생들로 하여금 이 번뇌를 극복하도록 설하셨다는 8만4천 법문을 각인할 때, 일자삼배라하여 한글자 새기고 세번 절을 하면서 16년간에 걸쳐 만들었다 하니 고려의 불심을 가히 상상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8과 관련되어 자주 되뇌이는 말은 사주8자일 것이다. 생년월일시를 뜻하는 여덟 글자속에 예정된 인생이 모두 들어 있다는 사상으로 서양의 점성술과 아주 흡사한 기본 개념이다. 인생이 어려워서 칠전8기의 오기로도 극복하기 어려운 경우에 8자 타령을 하게 된다. 하지만 8자를 믿으면 사는 재미가 없다. 나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결혼은 남자의 사주단자를 여자집에 보내는 일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만큼 민중의 생활 깊숙히 사주8자의 사상이 파고 들었다고 볼 수 있다.

 

9)숫자 9 - 세상이 어지러워 살아가기 어려운 상황을 9절양장 또는 9곡간장이라 했다. 민요속에 서민들의 애환이 섞인 가락에 실려 자주 불려지던 말이다. 삶이 어려워도 9사일생의 어려움이 상존하지는 않을 진데 상대적 고난을 느끼거나 뛰어 넘을 수 없는 신분상의 벽에 부딪혔을 때 한숨과 함께 터져나오던 말일 것이다.

황해도의 9월산은 백두대간의 지세에서 홀로 떨어져 나와 우뚝 솟아 있기 때문에 풍수적으로 역적이 나오는 터라고 한다. 황석영님의 장길산의 주 무대가 9월산인 것도 우연이 아닌듯 싶다. 정의의 봉기와 역적행동과는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시대를 앞서서 바라본 많은 사람들이 당대에 인정받지 못하는 일을 하므로서 비극적인 삶을 산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9절판은 찬합에 담긴 음식을 일컽는 것으로 궁중식과 양반집에서나 먹던 민간식의 두가지가 있다. 9절판의 음식을 서로 비교해 보면 궁중에서 먹는 음식과 민간에서 먹던 음식의 차이를 알 수 있다. 민간식은 미나리, 강회, 쑥갓, 홍당무, 생채, 육회, 계란부침, 어회 등이며, 궁중식은 연한 쇠살코기, 미나리 양념볶음, 양 흰부분 볶음, 계란의 흰자 노른자를 따로 부쳐 채친것, 양념 숙주, 무우 볶음, 표고 볶음 을 가장자리에 담고 중앙에 밀전병을 담아 주변의 여덟가지 반찬을 밀전병에 조금씩 올려 삼싸 초장에 찍어 먹었다.

강장제나 보혈약으로 쓰이는 9절초는 음력 9월 9일에 채취하는 것이 가장 좋다하여 9절초란 이름이 붙여졌다. 예부터 9월9일은 중양절로서 양의 두 수가 겹쳐진날이라 불렀고 이날은 국화전이나 국화주를 가지고 들에 나가 즐겼다. 어린애들은 꼬리가 9개 달린 9미호 얘기에 여름밤을 겁먹은채 보내야 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하늘길이 9만리길이라 하여 하늘을 9만리장천이라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로켙트를 발사할 경우 최적지는 경북 대보면의 9만리라는 곳이 될 것이다. 9만리에서 9만리장천에 로켙트를 발사한다는 생각을 하면 조상들의 지명 작명법이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지명중에 따듯할 온(溫)이나 물수(水)자가 붙은 곳은 온천이 있는 것도 재미있고, 금(金)자가 들어가는 지명에서 실제로 금이 생산되는 것도 흥미롭다. 특히 충북 청원군에는 비상리와 비하리란 동네가 있는데 결국은 이곳 가까이에 비행장이 들어서서 다시 한 번 조상들에게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10) 숫자 0 - 0은 없는 것을 나타내는 기호이다. 수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있는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없는것을 나타내는 기호가 이용된다는 것은 아이러니컬 하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0은 고도의 수학개념이고 역사적으로는 컬럼버스의 달걀에 비유된다. 그러므로 0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문명사에 뒤늦게 나타난다. 인도에서 876년에 사용된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인도인이 세계에 선사한 선물 두가지를 고르라 하면 서슴없이 불교와 바로 0을 고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수의 자리의 원리와 0의 용법은 인도 보다 수세기전, 그리스도 기원 초기에 중앙 아메리카의 마야족이 먼저 알고 사용하였다고 하지만 세계문명사에 최초로 0을 제공한 것은 인도이다. 마야족은 20진법을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0은 숫자를 표기하는데 있어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동일한 숫자를 이용하되 일자리, 십자리, 백자리, 천자리, 만자리 등의 자리수 개념을 0이 제공한다. 대응하는 자리에 숫자가 없을 경우는 0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0을 발견한 이후로 아무리 큰 수라도 표현이 가능해지고, 수학의 모든 연산이 수월해졌던 것이다.

만약에 0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렇잖아도 어려운 수학이 더 재미없고 어려웠을 것이며 지금과같은 현대 문명을 아직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컴퓨터는 더더욱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 문명에 0이 끼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11) 미술속의 수 - 미술은 수와의 연관성 보다는 기하학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 된다. 결국, 이차원적인 평면상에 삼차원적 사실 세계를 표현해 내기 위해서는 평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 다음 평면상의 그림에 입체감을 주기 위하여 명암이나 안료의 농담에 의한 표현기술이 요구되지만 우선은 기하학적인 원근구도법을 알아야 할 것이며, 물체의 형체상의 비례관계를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즉, 그림을 그리기 위한 일차적인 출발점은 자연에 대한 관찰이 엄밀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고대인들이 바위암벽에 그린 그림이나 이집트의 벽화, 어린애들의 그림은 관념상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입장에서 보면 고도의 추상화를 그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만 사실화를 그리고자 하는 의도에서 어긋난 것이므로 유치하다고 평가를 한다.

화가마다 그림의 분위기나 구성, 화풍이 모두 제각각 인데 이는 사람마다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과 시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같은 그림이 만들어 질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화가와 일반인이 다른점이 있다면 그것은 대상에 대한 이미지를 그림속에 만족스럽게 표현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화가들은 많은 시도를 통하여 자신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고 일반인은 표현방법을 터득하지 못했을 뿐인 것이다.

대상의 기하학적인 비례관계는 그림이나 조각의 안정감을 확보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플라톤 이래 전해져오는 황금분할을 그림에 많이 적용하였기 때문에 그림이 안정감을 준다고 말한다. 서양에서 황금분할은 기하학에서 나왔지만 자연의 식물구조에도 자주 나타나는 비례수치이다. 황금분할의 정확한 수치는 직사각형 구조에서 나온 것으로 (루트5 - 1) : 2 이다. 다시쓰면 1 : 1.618 의 비가 된다. 이 비는 팔등신 미인으로 유명한 미로의 비너스상에도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불상도 생김새가 서로 다르고 부처상의 이미지도 서로 다르게 수없이 만들어져 있다. 그중 석굴암의 석가모니불이 가장 안정감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1 : (루트2) 즉, 1: 1.414 의 비를 기본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비는 황금분할과 아주 유사하다.

 

12) 음악속의 수 - 음악은 외설이 개입되지 않는 유일한 예술이라고 쇼펜하우에르는 말했다. 인간 심성의 가장 깊숙한 곳을 자극하는 예술이며, 소리의 예술이기 때문에 형체가 없고, 일과성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의 발생기원은 심장의 박동에서 시작되고 따라서 주술이나 사냥에 처음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서양음악은 기원전 6세기에 살았던 피타고라스에 의하여 현의 길이와 음의 높이 사이에 관련성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음계에 대한 개념이 싹트게 되었다. 고대 수사들의 노래가 장중하고 화음이 잘 맞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이 곧 피타고라스 음계에 뿌리를 두고 있는 순정율음계이기 때문이다. 순정율 음계는 진동수비가 1:2인 완전8도, 2:3인 완전5도, 3:4인 완전4도음정을 기본으로 조합하여 만들어진 음계를 일컽는다. 순정율음계는 화음은 잘 맞지만 변조를 하기가 곤란한 점이 있어서 다양한 곡을 만들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이런 문제를 최초로 이해하고 현대적 평균율음계를 만들어 사용한 사람이 바로 바하이다. 따라서 바하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평균율 음계는 화음에 약간의 소음이 관여하기는 하지만 하나의 악기로 여러 변조곡을 연주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전세계적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옥타브란 소리의 진동수비가 2:1인 영역을 말하는 것으로 현재 서양음악의 C음은 261Hz 이고 위의 C음은 522Hz 이다. 이 옥타브를 정확히 12등분하여 평균율음계가 결정된다. 여기서 12등분을 할 때, 산술적으로 12등분을 하지 않고 지수적으로 12등분을 하게 된다. 음정에 대한 청각이 로그함수적이기 때문이다. 서양음악의 진동수 기준은 A음(라음)을 440Hz 로 택하여 결정 된다. 가끔 연주자 피치라 하여 연주자가 청중의 감흥을 더 유발하기 위하여 고의로 각 음의 진동수를 5Hz 정도를 높여 연주하는 경우는 있지만 기본틀은 유지되고 있다. 사회가 불안해지거나 전시에는 진동수가 전체적으로 높아지고 평화시에는 진동수가 낮아지는 것도 흥미있는 일이다.

국악의 음계는 성현선생께서 작성하신 악학궤범에 따라 결정되는데 순정율 12음율 5음음계를 기본구조로 만들어 졌다. 세종시대에 박연선생께서는 황해도 해주산 거서 100알의 길이로 황종척을 만들고, 황종척의 9/10의 길이를 황종율관으로 택하여 음계를 정하였다. 황종율관의 길이는 31.2cm으로 삼분손익법 즉, 황종율관에서 시작하여 3분의 1을 더하고 3분의 1을 감하는 작업을 반복하여 서로 다른 12개의 관을 만들어 낮은 음부터 높은음의 순서로 황종,대려,태주,협종,고선,중려,유빈,임종,이칙,남려,무역,응종,청황종의 음계가 만들어지며 이중에 진동수비가 간단한 황종,태주,고선,임종,남려를 차례로 궁,상,각,치,우로 택하여 5음음계를 만든것이다.

12개의 율관은 대나무로 만드는 것이 원칙으로 양쪽이 열려 있기 때문에 한쪽을 손바닥으로 막은 후 한쪽에 입을 대고 병을 불듯이 불어서 나오는 소리를 율음으로 들으면 틀림없다. 12율관을 보려면 국립국악원의 전시실이나 독립기념관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국악이 5음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평조와 계면조(라단조)만이 작곡되고 연주되기 때문에 국악음악이 다양성을 잃고 비슷비슷하다는 느낌을 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국악을 잘 들어보면 은은하면서도 힘찬 음악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수제천은 빼어난 작품으로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곡조를 기억해 둘만 하다고 생각된다.

순정율이 다양성을 상실하는 이유는 협화에 비중을 둔 음계의 기본틀을 유지해야 하므로 악기가 변조곡마다 달라져야 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60가지의 변조형태가 악보상으로는 가능하지만 연주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국악의 진동수는 황종음을 259Hz로 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서양악기인 피아노를 조율하여 국악을 연주할 수는 있지만 단순하게 서양악기와 국악기를 들고나와 협연을 하는것은 음악의 영역을 넓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두 음악의 악률만을 흐트러 트리는 결과만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음계의 체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만 꽹가리나 북, 징 과 같은 타악기는 음정을 맞춘 악기가 아니므로 서양음악속에 단순한 타악기를 제공하는 측면에서 협연이 있을 수 있다고 보여진다.

 

Posted by 다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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