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생활과 시간

1)첫머리 2)70평생과 25.000번 3)옥토끼와 어부 4)보리고개와 동장군 5)낚시광과 예배 6)시간은 운동의 그림자 7)6시간 수면과 적외선 8)먹는 시간과 직업 9)화장실과 시간 10)목욕과 쑥 11)여자의 일생 12)직장인의 하루 13)저녁시간 14)전문가가 되는 시간 15)남아수독오거서 16)영어와 한자 17)자동차와 시간

 

 

1) 첫머리 -  어느날 삶의 편린들을 주워 모아 계산해보고 싶어졌다. 저녁에 커피를 큰 컵으로 한 잔 준비하고, 책상앞에 앉아서 새벽 하늘에 먼동이 틀 때까지 계산기를 두드려 가면서 삶의 자투리 시간과 소량의 행동에 관련한 숫자들을 측정과 기억을 바탕으로 긁어모아 계산하며, 이 글을 썼다. 20일 정도의 작업 시간이 필요했다.

 

2) 70평생과 25,000번 -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항상 궁금한 질문거리이다. 행복한 인생이든 불행한 인생이든 오래 살고 싶어하는 심정은 매일반이다. 평소에 건강하다가도 병이 들면 삶에 대한 의욕이 더 힘차게 솟구치는 것을 느끼게 되지만 살아있는 것들은 언젠가 반드시 죽게 된다고 누구나 굳게 믿고 있다. 미래에 대하여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죽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보통의 동물은 성장기간의 5배 정도의 수명을 산다고 한다. 말은 5년을 성장하므로 25년의 수명을 살고, 코끼리의 성장기간은 12년이므로 60년이 평균 수명이 된다. 이 공식에 사람을 적용하면 사람의 성장기간은 20년이므로 100세를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인의 평균 수명은 70 전 후로 조사되고 있다. 그것도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의료혜택과 식량생산기술이 발전한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신석기 시대인의 평균수명은 아주 짧았으리라고 추정되고 있고, 동양에서는 환갑만 살아도 아주 오래 살았다고 하던 시절이 그리 오래 되지는 않는다. 하여튼 현대인을 기준으로 인생을 계산해야 하므로 사람의 한평생을 70세로 한정하겠다.

70평생은 지구가 태양주위를 70회 공전하는 동안을 의미한다. 1회 공전의 시간이 1년 이므로 1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공휴일이나 개천절 같은 국경일은 평생 70회를 맞이한다.

지구는 한번 공전할 때마다 365회의 자전을 하므로 1년은 12개월이고, 365일이 된다. 그러므로 70년은 840개월이며, 날수로 바꾸면 365일/년 x 70년 =25,550 일 이다. 이는 70평생에 2만 5천번(간편하게 다루기 위하여 앞으로 25,550일을 25,000일로도 다루겠다.)의 밤과 낮을 맞이하며, 아침과 저녁을 각 각 맞이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계산할 때 2만 5천이란 수의 의미는 심중하다. 인생 속에서 하루에 한번씩 반복되는 일들은 살면서 2만 5천번 되풀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부자리 펴고 개기 각 각 2만 5천번, 아침 세수와 치솔질 2만 5천번, 아침,점심, 저녁식사 각 2만 5천번 그 외에 자기 스스로 하루에 한번씩 행하는 모든 일이 2만 5천번 반복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발을 닦거나 양말을 신고 벗는 동작을 평생 2만 5천번 반복한다는 것이다.

70년을 시간으로 계산하면 61만 3천 시간이 된다. 다시 분으로 70년을 나타내면 3천 6백 80만 분이며, 1분은 60초 이므로 70년은 다시 22억초가 되는 시간이다. 우리는 결국 22억초를 산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삶의 시간은 소중한 것이므로 가벼이 여겨 인생을 낭비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3) 옥토끼와 어부 - 한 평생 동안 달의 위상변화는 25,550일 ÷ 29.5일/개월 = 866 번 변화한다. 보름달을 평생동안 빠지지 않고 본다고 할 지라도 겨우 800번 정도, 그것도 부지런해야 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한평생의 시간길이를 달의 운동으로 말할 때, 달이 지구를 866번 도는 동안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70년 동안 양력의 840개월 보다 음력의 개월 수가 26개월 많으므로 윤달을 26번 접하게 되는 것이다.

하늘에 해와 달이 하나씩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간단한 신화가 있다. 소별왕이 대별왕을 찾아가 하늘에 2개씩 떠있는 해와 달의 혼돈을 바로잡아 줄 것을 부탁하였다. 소별왕의 청을 들어주기 위해 대별왕은 천근 활과 천근의 화살을 마련하여 뒤에 있는 해와 달을 쏘아 떨어뜨렸다. 그 후로 해와 달이 하나씩 뜨게 되었고 세상은 살기 좋게 되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설화가 전해지는데 해와 달에 얽힌 얘기로 연오랑이 해이고 세오녀가 달에 비유되고 있다. 즉, 옛부터 달은 음이고 가을도 음이라 가을의 달인 한가위 달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였다.

원래 달의 검은 부분은 지대가 낮은 곳으로 검은 현무암이 노출되어 물없는 바다라 불리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계수나무 아래에서 옥토끼가 불로장생 약을 찧고 그 앞에 두꺼비가 앉아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후에 배가 고픈 사람들이 두 마리의 옥토끼가 떡방아를 찧는 것으로 곡해하여 전해져 온다. 하여튼 아폴로 11호 때문에 단순한 신화는 사라져 버렸다.

달은 태양과는 달리 모양의 변화를 반복하는 정도가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농경민족의 책력의 기준이 된 것은 역사 초기의 지식층과 권력집단의 단순한 선택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한 달이란 시간길이는 일 년의 시간길이 보다 짧기 때문에 좀 더 용이하게 인식될 수 있는 점이 이유라면 이유가 될 수 있겠다. 고대부터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태양이 변하지 않는 황금과 같은 색이며 양기의 상징으로써 임금에 비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매일같이 위상이 변화하는 달에 맞추어 책력을 만든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농사는 달보다 태양에 더 많이 의존하므로 복잡하게 계절을 꿰어 맞추는 24절기가 음력에 필요한 것을 보면 동양에서는 태양력보다 태음력이 더 일찍 만들어 질만한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음력은 농부들에게 보다는 어부들에게 더 긴요한 책력이다. 달의 기조력 때문에 바닷물이 들고 나기 때문이다. 매 달 태양과 지구와 달이 일직선을 이루는 보름과 그믐에 사리가 일어나고 지구를 정점으로 달과 태양이 직각을 이루는 상현과 하현에 간만의 차가 가장 적은 조금이 일어난다. 즉, 조금과 사리는 한 달에 두 번씩 있으므로 일생동안 각 각 866x2=1,732번 일어나는 것이며, 밀물과 썰물은 각 각 하루에 두 번 일어나므로 평생 5만번 갯벌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낮과 밤을 생각한다면 그 절반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4) 보리고개와 동장군 - 북반구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한 평생동안 각 계절을 70번씩 맞이하게 되는데 20세 부터 농사일을 한 농부는 50회의 볍씨를 뿌릴 수 있으며 50회의 가을을 맞이하므로 50번의 추수를 할 수 있다.

봄은 움추렷던 생기를 되찾아 부산하게 움직이는 곤충과 식물들의 변화를 통하여 실감할 수 있다. 봄은 생동하는 계절이므로 시작과 출발을 상징하기 때문에 계절까지도 봄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봄은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농부들에게 좋은 계절이 되지는 못했다. 지난 가을에 거두어 들인 쌀을 겨우내 다 먹어치우고 더이상 먹을 것이 없어 초근목피로 근근이 연명을 하게 되는데 이를 보리고개라 한다. 초근은 나물과 칡뿌리등이며 목피는 송곳이라 부르는 소나무의 속껍질을 말한다. 봄 사돈은 꿈에 보아도 무섭다는 속담도 봄의 곤궁함을 뜻한다.

여름은 이미 진초록으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생기를 잔뜩 과시하고 있을 뿐 습기로 찐득거리고 곤충들의 생기도 왕성하여 안정되지 못하고 시끄러운 계절이다. 여름은 불에 비유된다. 불단지를 관장하는 축융은 옥황상제로부터 2번째 계절인 여름에 대지를 불로 달구고, 만물을 번창하게 하는 권한을 부여 받았다고 한다. 혹은 겨울의 동장군(현대적인 의미로는 시베리아 한대기단) 이 세 번 엎드려서 3복이 온다고도 한다. 그러므로 여름은 덥다고 신화는 말하지만 사실은 지구의 자전축이 공전 궤도면에 수직이 아니고 23.5도 어긋나 있기 때문에 계절의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계절의 맛은 가을이 제격이다. 풍요가 온 곳에 널려있고 감출 것이 없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보여주는 나무와 같이 사람들은 좀 더 솔직해지고 계절적으로 자신을 위한 시간의 여유가 틀을 잡는 때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게 되며 사색에 빠지게 되고 독서를 하게 된다.

근래에 채소나 과일, 혹은 너무 따듯한 옷 때문에 겨울을 잃고 지내는 경향이 심하여 진정한 계절의 맛을 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겨울은 계절의 바닥이다. 더 내려갈 수 없는 바닥이기 때문에 가장 안정된 계절이며 흰 눈이 내리는 날은 도둑도 도둑질을 삼가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에 눈을 뜨며 진정한 삶을 사는 계절이라 할 수 있다. 안으로 마음의 눈을 돌려 성찰의 기회를 갖고, 마음의 뒤뜰을 정리할 수 있는 것도 겨울이 주는 은혜라 할 수 있다. 가족간의 대화도 역시 겨울에 집에서 피는 꽃이라고 할 수 있다.

 

5) 낚시광과 예배 - 우리는 일 월 화 수 목 금 토의 주기적 시간 개념을 가지고 생활한다. 이 단위는 원래 바빌로니아 문명에서 시작된 것으로 한 평생동안 25,550일 ÷ 7일/주 = 3,650 번 반복된다. 즉, 각 요일을 3,650번 맞이하는 것이다.

3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는 경우, 1년에 52회의 주일이 있으므로 1,560번 정도의 일요일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했으니 가정이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겠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가장들은 하소연한다. 일요일에 낮잠자기를 즐기는 경우가 대부분 이라는데 2시간 씩 일요일 낮잠을 잔다면 1,560x2시간 = 3,120시간 = 130일이다.

주일마다 예배를 보는 사람은 50년 동안 교회에 나가는 경우 평생 2,600번의 일요일 아침예배를 보게 된다. 한번의 예배시간을 60분이라고 하면 2,600x60분 = 156,000분= 2,600시간 = 108일 정도 밤 낮 없이 예배를 보는 것과 같다. 수요예배에 참여하면 5,200번 예배를 보는 것이고 일요 예배와 함께 총 200여 일의 예배를 50년 동안 보게 된다. 25,000일 중에서 200일은 0.8 퍼센트의 시간이다.

 

반면에 불자들은 한 달에 초하루와 보름에 두 번 절을 찾게 되는데 법회가 있으면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리지만 부처님만 뵙고 절 만 하는 경우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평균적으로 한 달에 약 40분 정도의 예불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 이는 50년간 사찰을 찾을 경우 247시간 예불을 드리는 것이며 10일에 해당한다. 물론 신심에 따라 개인적인 차이가 많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낚시광인 남편이 일 년에 10달 정도를 매달 3회씩 주말에 낚시 가기를 20년간 계속할 때 20년x10개월/년x3일/개월=600일이 된다. 이는 본의 아니게 부인에게 1년 8개월 정도의 주말 과부 생활을 강요하는 것이다.

 

6) 시간은 운동의 그림자 - 시간이란 무엇일까? 인간은 운동과 변화를 통하여 시간을 인식한다. 심지어 시간은 운동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주기적인 운동이나 변화를 잣대로 삼아 다른 변화와 운동을 비교하므로써 운동의 속도와 변화의 완급을 논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는 벽시계든 원자시계든 모두가 물리적인 등시성 즉, 주기적 특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운동과 변화가 없다면 시간은 인식될 수 없으며 자체로써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변화와 운동이 있으며 따라서 시간이 있고 변화와 운동이 연속적이기 때문에 시간의 최소 단위는 있을 수 없다. 만약에 시간의 양자화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곧 운동과 변화의 불연속성을 의미하며 그 역도 성립될 수 있다.

시간이 운동과 변화의 상대적효과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관점은 특수 상대성원리에 의해서도 명백해 진다. 시간이 상대적운동을 하는 관측자에 대하여 다르게 관측된다는 결론은 절대적 시간개념이 우주의 본질이라기 보다는 다만 운동과 변화가 있기 때문에 시간이 주어질 수 있다는 상대적 관점이 좀 더 합리적이라 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우주가 생기기 이전에는 시간이란 없었다고 할 수 있으며, 현재의 우주가 생긴 이후에도 운동과 변화가 없이 지루한 정적만이 있었다면 마찬가지로 시간이란 개념은 없었을 것이다. 즉, 시간이란 운동과 변화의 척도이며 절대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실체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 생활에 편리를 위해 도입하는 시간개념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며 시간단위는 단순히 인간의 선택문제가 될 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단위는 하루를 24시간으로 선택한 바빌로니아 문명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12간지에 맞추어진 시간을 사용했지만 바빌로니아에서는 1시간을 60분으로 1분을 60초로 나누는 60진법에 맞추어진 시간체계를 사용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하루는 24시간이며 1,440분이며 86,400초가 된 것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하루는 천구의 적도상을 공전하는 가짜태양인 소위 평균태양이 표준자오선에 남중했다가 다음날 남중하는 동안을 말한다. 하루의 정확한 시간길이는 1900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 동안에 결정되었고, 이 시간의 86,400분의 1의 시간길이를 1초라고 했다. 현재는 세슘원자시계를 이용하여 정확한 1초의 길이를 정하는 방식이 국제도량형협회에 의하여 약정되어 전세계가 이를 준수하고 있다.

정확한 기본단위를 설정하고 측정하는 기술의 축적은 아무리 강조해도 그 중요성이 도를 넘지는 않는다. 과학적 측정의 기본은 기본단위의 설정에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이 인문,사회과학에 비하여 이론의 여지가 적고 쉽게 동일한 결론에 합의하는 이유는 복합적이기는 하지만 기본단위의 설정과 측정이 가능하다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문,사회과학에서는 인간의 감정이나 욕구를 측정할 방법이 모호하고 측정의 전단계인 기본단위 설정이 용이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론조사나 표본조사 이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정확한 측정이 거의 불가능하며 따라서 예측이 곤란하고 이론의 여지가 분분한 것이다.

시간은 시계로 측정한다. 고대부터 시간의 측정을 위해 많은 노력이 경주되었고 대부분 태양을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였다. 영국의 스톤헨지는 계절의 시간을 측정하는 거석문화의 유적이고 우리나라의 앙부일구는 훌륭한 해시계이다. 계절과 시간을 측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외에도 물의 흐름을 이용하던가 모래의 운동을 이용한 모래시계가 있었지만 근대적 의미의 시계는 네덜란드의 호이겐스에 의해 발명되었다. 호이겐스의 추시계는 갈릴레오가 발견한 진자의 등시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추시계의 기본원리는 매달린 추가 동일 시간간격으로 운동할 때마다 톱니를 한 칸씩 움직여 시계바늘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추시계는 움직이는 곳에 설치할 수 없는 단점이 있어, 그 후 태엽의 동력을 이용한 태엽시계가 만들어 졌다. 감긴 태엽은 스프링의 일종이므로 원래대로 풀리는 성질이 있는데 이 복원력으로 톱니를 회전시켜 시계바늘을 움직이는 시계이다. 아직도 값비싼 시계가 태엽시계인 것은 보수적인 사람들의 권위에 대한 향수가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에는 전자시계가 값도 싸고 정확해서 대중화되어 있다. 전자시계는 주로 수정을 이용하는데 적절하게 잘려진 수정은 고유 진동수를 갖는다. 약 3.5MHz의 고유진동수를 갖는 수정을 콘덴서 사이에 끼우고 집적회로에 연결하여 발진시키면 60Hz의 신호를 얻을 수 있다. 이 신호를 세면 초가되고, 60초가 지나면 1분이 되도록 하여 시간을 측정한다. 수정발진 시계는 보통 손목시계에 많이 이용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비디오나 전자렌지, 전축등에 붙어 있는 시계는 전기신호를 직접 세어서 시간을 측정한다. 거의 전 세계적으로 60Hz의 교류발전을 하므로 전기의 신호를 시간측정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전기시계라 하는데 정전시 시계가 멈추는 것이 단점이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자석진자를 이용하는 트랜지스터 시계가 있다. 보통 건전지로 작동하는 벽시계가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휴대가 곤란하지만 건전지 1개로 1년 정도를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시간을 측정하는 기술은 매우 정밀하고 국가 기술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밀측정을 둘러 싼 국가간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과학기술은 국력이라고 외치고 있다. 로켓트 기술이 미사일을 만드는 기술이고 원자력기술이 핵 폭탄을 만들 수 있는 것만이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경제적이고 성능이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우위확보는 경쟁이며 경쟁은 국가를 위한 것이다. 과학이 매우 객관적인 학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국수주의적 성격을 나타내는 부분이 도처에 널려 있다.

길이의 단위인 1m를 지구둘레의 4천만 분의 1로 즉, 적도에서 북극까지 거리의 1천만 분의 1로 정한데는 프랑스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다. 프랑스는 영국이나 독일 및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1875년에 국제도량형 협회를 창설하여 1m를 결정했다. 프랑스는 이미 적도에서 북극까지의 거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네 나라에서 사용하는 길이단위의 변화에 따른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1미터라는 자국의 단위의 2배가 되는 길이를 현재의 1m로 책정하려고 1천만이란 숫자를 들고 나온 것이다.

도량형은 국가의 살림살이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것이다. 한자어로 제도는 국가의 법규를 말하지만 원래는 길이를 정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길이가 결정돼야 땅의 면적을 알고 세금의 양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에 분서갱유란 유례없는 만행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사실은 사상의 통일과 지방마다 다른 도량형의 단위를 통일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뀐 도량형에 적응하기는 어려움이 많다. 우리나라도 미터법에 따라 넓이를 평에서 m2 단위로 바꾸었지만 아직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는 이런 문제 때문에 1m란 단위 결정에 선수를 친 것이다. 따라서 영국단위를 주로 사용하는 미국이나 영국은 아직도 일상생활에서 피이트나 파운드, 야드, 마일 등의 단위를 고수하고 있다.

날짜변경선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그어졌다.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태평양 에 날짜변경선이 그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미국을 가면 하루를 빼야 하고 미국에서 우리나라에 오면 하루를 더해야 한다. 날짜변경선은 미국과 유럽의 유대관계가 동양과 미국의 유대관계 보다 더 긴밀하기 때문에 자기들을 하루생활권으로 묶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대서양이 아닌 태평양에 그어진 것이다. 그러기에 러시아의 동부가 세계의 첫날을 가장 먼저 맞이하고 다음이 일본이며 다음이 한국이 된다.

여하튼 지구가 자전을 하든 천구가 지구 주위를 공전하든 하루에 한바퀴 도는 것은 같다. 즉, 24시간에 한바퀴를 돌기 때문에 360도 ÷ 24시간 = 15도/시간 으로 한시간에 15도를 돈다. 따라서 경도 15도 차이는 시간으로 1시간의 차이를 갖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표준자오선은 일제 때 일본의 동경을 지나는 135도 경도로 결정되어 지금도 아무 수정 없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영국과는 135도 ÷ 15도/시간 = 9시간 의 시차를 갖는다. 미국의 로스엔젤레스와는 시간적으로 7시간의 시차가 있다.

 

7) 6시간 수면과 적외선 - 하루에 8시간 잠자는 사람은 25,000일 x 8시간/일 = 200,000시간 = 22년 10개월을 잠을 자면서 보내는 것으로 하루에 6시간 자는 사람보다 25,000일 x 2시간/일 = 50,000시간을 더 자는 것이며 결국, 8시간 잠자는 사람을 기준할 때, 6시간 잠자는 사람이 50,000시간 ÷ 24시간/일 = 2,083일 = 5년 8개월을 더 사는 것과 같다. 이처럼 부지런한 사람은 일생동안 이루는 일도 많을 뿐더러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으므로 더 바랄 것이 없는 사람이다.

일본의 후지모도 겐고는 3시간 수면을 권장하고 있고, 나폴레옹도 하루 3시간 수면을 취한 것으로 유명하다. 만일 30세인 사람이 40년간 3시간 수면을 취하는 경우, 하루 8시간을 자는 사람보다 365일/년 x 40년 x 5시간/일 = 73,000시간=3040일=8년 4개월을 더 깨어 있는 것이다. 잠을 적게 잔다고 수명이 단축된다는 보고도 없고, 천하의 진시황도 불사약을 찾았으나 장수하지 못했으므로 잠을 줄여서라도 사는 시간을 연장시키는 방법이 개인적인 삶에는 좀더 효과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12년 후의 세상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만 다를 뿐이다.

생리학적으로 두뇌에서 필요로 하는 감마아미노낙산이 감마하이드로 오키시산과 암모니아로 분해하게 되는데, 전자는 수면을 통해서만 제거가 가능한 것으로, 잠이란 감마하이드로 오키시산을 제거하는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즉, 잠이 생활의 활력을 주는 가장 좋은 휴식이라는 의미가 되겠지만 다른 견해의 한가지는 인류나 동-식물에 만연된 일종의 전염병이라는 주장도 있다. 사실 인간의 두뇌는 깨어 있을 때 활발한 혈액순환에 의해 더 많은 영양과 산소를 제공받고 노폐물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생각만 하지 않고 선이나 명상 속에 들면 더 나은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잠을 자는 습관이 들었을까? 그것은 감각기능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각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시각이 가시광선 영역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시광선이 부족한 밤에 우리의 먼 조상들이 할 일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정신을 잃게 되고 이것이 습관이 되어 잠을 자게 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따라서 사람이 적외선 영역까지 감지할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면 아마도 잠을 자지는 않았을 것이다. 밤에도 적외선은 많이 있기 때문에 활동을 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조상들이 진화의 초기에 미처 적외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여 영장이면서도 동물적인 습관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 곧 잠이라 할 수 있다. 애초에는 필요없던 잠이 지금은 잠을 자지 않으면 일주일 이내에 죽게되는 무서운 잠복성 질병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8) 먹는 시간과 직업 - 사람은 하루에 3번의 식사를 한다. 일생동안 25,000일 x 3회/일 = 75,000번의 식사를 하는 것이다. 한끼 식사시간은 보통 20분 정도이므로 75,000회 x 20분/회 = 25,000시간 = 1,041일 = 2년 10개월이 된다. 결국, 밤낮없이 2년 10개월을 먹어야 70년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식사만 종일하고 하루에 8시간씩 잠을 잔다면 25,000시간은 4년 4개월이 된다. 여하튼 시간으로만 비교하면 사람은 4년 4개월을 위해 65년 8개월을 사는 것이 아니고 65년 8개월을 살기 위해 4년 4개월을 먹는다고 볼 수 있다.

즉, 사람은 살기 위해 먹는 것이다. 다만 사회적 구조에 얽매어 먹을 것을 구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힘들기 때문에 마치 먹을 것 구하느라 사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뿐이다. 따라서 좋은 사회란 먹을 것 구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사회가 아니라 많은 시간을 자기영혼의 발전을 위해 할애할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문화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비용이 너무 필요한 나머지 그 비용을 벌어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하다면 정작 문화생활을 즐길 시간은 없기 때문에 삶은 삭막해 진다. 직장 남성들이 하소연하는 내용은 결국 이와 상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삶은 고달퍼 진다. 결국 지성이나 감성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단순히 말장난에 불과하다. 귀한 직업이란 생활에 필요한 경제적 여건을 제공하면서 자신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직업을 말한다. 직업적인 일이 곧 자신의 삶을 살찌울 수 있는 직업으로는 화가, 음악가와 같은 예술가, 사업가, 건축가와 같은 자기 성취의 기회를 가진 사람, 소설가, 시인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있는 사람 및 종교가와 같이 자신의 최고가치를 위해 평생을 사는 사람 등의 직업을 들 수 있다. 봉급 생활자는 사소한 일에 신경을 써야 하고 하기 싫은 일도 마지못해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결코 좋은 직업이라고 할 수 없다. 나쁜 직업은 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일에 매달려야만 하는 경우의 직업을 말한다. 이런 직업은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일을 해도 표시가 나지 않으며, 특히 자기가 아니라도 남이 능히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부류의 일이 된다. 한마디로 보람없는 일이다.

 

 

9) 화장실과 시간 - 식사는 식당이나 방에서 하지만 양치질이나 세면은 화장실에서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에 먼저 들르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되어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하루에 화장실에 들르는 횟 수는 대개 5 내지 6회가 된다. 아침에는 세수하고 양치질, 세발을 해야 하므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양치질 3분, 세수 3분, 수염이 있는 사람은 면도하는데 3분, 머리 감는데 5분, 생리현상에 의한 배설시간 5분으로 계산하면 도합 19분 정도를 아침에 화장실에서 보내게 된다. 수염이 없는 여자들은 다른 곳에서 시간을 더 보내기 때문에 소요시간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낮에는 화장실에 4회를 간다고 할 때 매회 1.5분씩 6분이 소요되며, 저녁에 세수하고 발을 닦는데 5분이 걸리므로 하루에 총 30분을 화장실에서 보내게 된다.

5세부터 70세 까지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65년 x 365일/년 x 0.5시간/일 = 약 12,000시간 = 500일 = 약 1년 4개월이 된다. 인생의 1년 4개월을 화장실에서 보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여자들은 여기에 화장을 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므로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미국 화장지회사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인도 하루에 평균 30분을 화장실에서 보내는데 여자가 남자보다 5분을 더 사용한다. 이로서 여자는 남자보다 평생 82일 정도를 더 화장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여론 조사에 의하면 화장실에서 주로 하는 일은 전화통화를 꼽았다고 하는데 이는 거짓말이다. 아무러면 생리적인 배설이 으뜸이지 어찌 전화가 으뜸일까.

양치질이나 면도나 세수시간이 3분씩이고 양치질이나 세수는 하루에 두 번을 하기 때문에 세수와 양치질하며 보내는 시간은 각 각 98일이고 이는 3개월의 시간이 된다. 3개월 동안 세수만 한다면 고역이겠지만 평생에 걸쳐 나누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모르는 듯 지나치는 것이다. 세수를 하는 횟수는 70평생에 5만번이다.

3분 동안 양치질을 할 경우에 300회의 칫솔질을 한다. 그러므로 평생 치아를 칫솔로 문지르는 횟수는 65년간 1천4백만번이나 된다. 9세 쯤 이면 젖니에서 간니로 치아가 교체되는데 따라서 60년간 치아를 문지르는 횟수는 간니를 문지른 횟수가 된다. 1천3백만번이다. 치아의 상아 부분이 얼마나 단단한 것인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매일같이 면도를 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그러나 수염을 기르는 것도 쉽지 않다. 사회풍조가 수염을 기르도록 되어있는 이슬람국가라면 괜찮겠지만 우리나라는 수염을 기르면 뭔가 삐뚤어진 정신상태를 표현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어 불편하다. 얼굴을 면도칼로 몇 번을 스치는지 계산해 보자. 25세부터 매일 면도를 한다고 보면 45년간 면도를 한다. 면도하는 횟수는 평생 16,000번이고, 한번 면도할 때 두 번씩 한 부위를 문지른다면 32,000번을 면도날이 얼굴을 스치는 것이다. 이런 계산을 하다보면 한평생을 살기 위해서 남자의 얼굴이 얼마나 뻔뻔스러워야 하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10) 목욕과 쑥 - 예전에는 겨울에 별로 목욕을 하지 못했다. 한옥의 구조가 좁고 흙으로 만들어져 집안에 목욕간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네에 공동목욕탕을 만들어 두고 필요한 사람이 불을 지펴 목욕을 하곤 했다. 여염집에서는 나무로 만든 큰 통에 가마솥의 물을 퍼다가 목욕을 했다.

현대에 와서는 대중목욕탕이나 사우나탕이 많아 보통은 1주일에 한번씩 목욕을 한다. 자주하는 사람은 매일하기도 하고 목욕이 귀찮은 사람은 한 달에 한번만 하기도 한다. 목욕시간은 보통 남자는 한시간을 하고, 여자는 한시간 반 이상을 소비한다. 10세부터 70세 까지 스스로 목욕을 하는 횟 수는 3,000번 정도이고 남자는 3,000시간, 여자는 5,000시간을 목욕하는데 소비한다. 3,000시간은 125일이고 5,000시간은 208일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요즈음에 쑥이 피부에 좋다하여 쑥탕이 유행하고 사우나실에 쑥을 피우기도 한다. 사실 쑥을 삶은 물에 목욕을 하면 잔병이 없어지고 건강에 좋다고 옛부터 전해지고 있다. 쑥은 단군신화에서 영험한 것으로 나타난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곰과 호랑이에게 환웅은 쑥 한줌과 마늘 20개를 주고 100일간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되리라 하였다. 곰은 참을성있게 버티다가 21일 만에 사람이 되어 웅녀로서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 쑥은 원래 구황식물이었다. 쑥은 주변에 많이 자생하고 있으며, 먹어도 탈이 나지 않고, 맛이 좋아 즐겨 먹었다. 보리고개에 초근목피로 연명할 때 한국인의 생명을 지켜준 쑥이 지금도 다양한 쑥떡과 쑥국으로 계절의 별미로 남아 있다. 쑥은 조금만 나와도 쑥 나왔다고 한다.

쑥은 부싯돌을 부딪혀 불을 일으킬 때 부싯깃으로도 이용되었다. 쑥잎과 수리치를 섞어 비비면 하얀 솜이 만들어 지고 부싯돌의 불똥이 이 솜에 박히면 불이 붙는데 이를 입김으로 살살 불면 불꽃이 일어난다.

 

11) 여자의 일생 - 여자들은 가사를 돌보고 남자는 들일을 하도록 하는 관습인 부부유별이 삼국시대부터 유행하였다. 이 전통이 전래되어 아직도 시집간 여자는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집안청소를 도맡아 하고 있다. 현대판 삼강오륜이 만들어져 부부유별을 부부상조로 바꾸어 버릴 수 있다면 남자와 여자의 일을 구별할 필요도 없고, 시간있는 사람이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모두가 수긍하고 행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가 일생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기를 낳고 키우는 일일 것이다. 가치있는 일인 만큼 많은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오죽하면 자식을 키워 봐야 부모의 은공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첫 자식을 키울 때는 너무나 힘이 들어 거리에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새삼 신기해 보이기도 한다.

아기에게 하는 일은 주로 분유 먹이기와 기저귀 갈아주는 일이다. 분유는 하루에 6회 정도를 먹이므로 12개월 간 2,200번을 타서 먹여야 돌을 맞이한다. 기저귀는 개인적으로 차이가 많지만 보통 하루에 10장 내지 14장을 갈고 2년간 기저귀를 채워야 하므로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7000번 내지 10,000번이나 기저귀를 갈고 빨아야 한다. 어머니의 정성을 가히 짐작할 만 하지 않은가. 아기를 낳을 때마다 어머니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해야 한다. 두 명의 자식을 키우려면 2만번의 기저귀를 갈아야 하고, 세 명의 자식을 키우려면 3만번이나 자식을 위해 기저귀를 갈아야 한다. 기저귀를 갈고, 빨아서 개는 일은 힘들고 귀찮은 일이라서 근래에는 1회용 기저귀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편한 만큼 반대 급부도 커서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는 데도 사용량은 줄지 않는다.

여자가 시집을 가면 주부가 되어 밥을 해야 한다. 아무리 여권이 신장된 세상이라고는 하나 밥을 먹지 않고 살 수는 없으니까. 25세에 시집을 가면 55세 쯤 까지는 손수 밥을 해야 한다. 불행히도 자식이 없거나 불효자식을 두었을 경우에는 70세 까지도 자기 손으로 음식을 끓여야 한다. 30년간 밥을 하는 경우 32,000번을 식구를 위해 밥을 하던가 밥상을 차려야 한다. 한번 밥을 준비하는데 1시간이 소요된다. 점심에는 간단히 차리느라 30분만 식사준비를 한다면 하루에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2시간 30분을 소요하므로 1,140일 = 3년 1.5개월을 내내 밥을 하는 것과 같다. 70세 까지 손수 밥을 해야 하는 경우는 49,000번의 밥상을 차려야 한다. 평생 밥을 하는 시간은 4년 8개월이 된다.

만일 아침을 정식으로 식사하지 않고 간편식을 하는 경우는 10분정도의 준비로 식사를 할 수 있으므로 30년동안 9,000시간 = 375일 = 약1년의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다. 주부는 이만한 시간동안 더 휴식을 취하게 된다. 만일 1주일에 한번씩 온 식구가 저녁외식을 하는 경우는 30년 동안 1,500회의 외식을 하는 것이며, 여자는 1,500시간과 설거지 시간의 이득을 보게 된다. 1,500시간은 62일 정도의 시간이다.

식사 후에 주부들을 가장 괴롭히는 일이 설거지다. 설거지는 누구나 하기 싫어한다. 그러나 설거지를 해야 집안도 깨끗하고 다음 식사준비를 하기도 편하므로 할 수 없이 설거지를 하게 된다. 설거지를 하는 시간은 하루에 총 1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러므로 30년 동안 1만 시간을 설거지로 보내게 되며 이는 1년 3개월의 시간이 된다. 따라서 여자가 밥과 설거지를 위해 30년 동안 보내는 시간은 총 4년 5개월이 된다. 그것도 운이 좋아야 그 정도이지 며느리를 잘못 보거나 자식이 없으면 더 많은 시간을 먹는 준비에 투자해야 한다.

주부들이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은 밥하는 것과 설거지로 끝나지는 않는다. 시장을 보아야 하고, 미리미리 밑반찬을 준비해야 한다. 김치, 장 담그는 일, 멸치 다듬고 볶는 일, 방앗간에서 기름 짜 놓는 일, 고추가루나 양념거리 준비 등 헤아리기 조차 힘든 일들이 부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일들을 종합적으로 하는데도 하루 평균 30분 씩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30년간 5,000시간=208일의 시간이 가족의 식생활을 위해 주부가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다. 따라서 주부가 가족의 식생활을 위해 투자해야 하는 시간은 하루에 4시간이나 되며, 총 시간은 5년이 된다. 30년 중에서 5년은 약 17%의 시간이다.

주부는 남편과 애들이 출근하고 난 후에 집안 청소와 빨래를 한다. 세탁기가 있어서 빨래하기는 좀더 수월해 졌지만 사실은 편해진 것이 아니다. 예전에 세탁기가 널리 보급되기 전에는 옷을 한번 입으면 며칠씩 입고, 양말이나 매일 빨아 신는 정도였으나 근래에는 세탁기를 믿고 겉옷만 제외하고는 매일같이 갈아 입으니 세탁기의 도움이 있기는 하나 빨래의 양이 많아져 제로섬의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거두어 정리하는데 또 다림질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하루 1시간은 걸린다. 이 시간도 서두르기 때문이고 세탁기가 세탁을 하는 시간은 알아서 하기 때문에 제외 시킨 시간이다. 따라서 옷과 주부가 씨름하며 보내는 시간은 25세에서 60세 까지 13,000시간이고 이는 540일=1년 6개월이다. 35년 동안 1년 6개월은 옷과 씨름하며 보내는 시간이다. 계절이 바뀔 때 세탁소에 간다든가 옷을 구입하기 위하여 상점에 가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옷도 주부의 시간을 많이 소비 시키는 주범이다. 다만 상점에 가는 일은 다른 구매와 함께 이루어 지므로 복합적이고, 한편으로 주부를 집에서 해방시키는 것과 같이 주부의 마음을 환기 시키므로 주부를 착각에 빠지게 하여 자신이 언제나 집안에 틀어 박혀 사는 것은 아니라고 믿게 한다.

주부를 괴롭히는 일에 집안청소를 빼놓을 수는 없다. 집이 넓으면 청소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겠지만 주로 사용하는 영역만 청소를 하므로 좁으나 넓으나 청소를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다. 단독주택의 마당까지 쓰는 경우는 다르겠지만 보통은 집안만 매일 청소를 하되 진공청소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청소에 드는 시간은 하루 30분으로 대략 생각할 수 있다. 25세에서 60세 까지 35년간 청소에 필요한 시간은 6,400시간=266일 정도가 된다.

주부가 하루에 식사와 빨래와 청소로 보내는 시간은 5시간30분이 된다. 또 자신의 세면과 화장시간을 고려하고, 식사시간을 고려하면 낮에 약 2시간 정도의 여유가 생길 수 있다. 이 시간을 낮잠으로 소비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취미 생활을 위해 활용할 수도 있다.

옛 부터 시집간 여자를 출가외인이라고 한다. 25세에 출가하여 55세 까지 30년 동안, 1년에 5번 친정에 와서 하루씩 묵고 간다면 30년x5일/년 = 150일 을 출가 후 친정에서 지내는 것이다. 즉, 25년 = 9,125일을 친정에서 자란 후 겨우 150일만을 나중에 방문하니 가히 출가외인이라 할만도 하다.

 

12) 직장인의 하루 - 남편들은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30분 정도 한다. 40세에서 70세 까지 아침마다 30분씩 운동을 한다면 5,500시간=230일을 운동으로 보내는 것이다. 운동을 마치거나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화장실에 갈 것이고, 준비된 아침식사를 마치면 준비된 옷을 입고 출근한다. 보통 한시간 이상의 출근거리에 직장이 있다. 만일 하루 2시간의 출퇴근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한 1년=300일로 계산할 때 30년간 18,000시간=750일=2년 을 출퇴근에 소모한다. 자가운전자라면 이 시간은 그야말로 인생에서 자칫 낭비의 시간일 수 있으므로 라디오를 듣던가 아니면 영어회화나 소설테이프를 틀어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전철이나 버스의 좌석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시간의 독서로 300쪽 분량의 책을 1,500권 읽을 수 있다. 짧은 시간의 활용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알 수 있다. 이는 한 달에 4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말이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직업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8시간 근무가 일반화되어 있다. 30년동안 평일에 하루 8시간을 근무하고 토요일에 4시간을 근무한다면 65,000시간=2,700일= 7년 5개월을 근무하는 것이다. 즉, 30년을 직장에 다니지만 하루 24시간을 종일 일 한다면 7년 5개월이고, 16시간 씩 꼬박 일하고 8시간 잠을 잔다면 11년3개월을 일하는 것, 즉 회사에 매인 것과 같다. 점심시간을 제외한다면 실제 근무시간은 이보다 더 줄어든다. 만일 하루 한 시간을 남보다 늦게 퇴근한다면 9,000시간=약1년을 더 일하는 것이다.

직장에 다니는 이유는 봉급을 받기 위해서 이다. 30년 동안 봉급을 받는 횟수는 360회에 불과하다. 360번의 즐거움을 위해 30년을 직장에 다니는 것이다. 40년을 직장에 다니는 경우는 480번의 즐거움이 있다.

집에 오기 전에 주당들은 술집에 자주 들르게 마련이다. 1주일에 한번씩 술을 마시는 경우 하루 4시간 정도 술을 마신다면 30년 동안 1,500회나 술자리에 가는 것이고, 6,000시간=375일=약 1년을 술 마시며 보내는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고 집에 오는 경우는 준비된 저녁을 먹고 텔레비젼이나 신문을 읽다가 잠을 자든가 비디오를 한편정도 보다가 잠을 잔다.

 

13) 저녁 시간 - 현대인의 생활에서 저녁시간은 가족과 함께 인생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시간이다. 한 가족이라 할지라도 저녁에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면 하루종일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이 현대인의 일상생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쨋든 한 가족이 저녁에 모이는 것만으로 만남이 있는 가족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또 하나의 현대생활이라 할 수 있다. 현대에는 가족의 결속을 무너뜨리는 장애요소가 너무나 많다.

저녁식사를 할 때에도 가족이 진지한 대화를 하기 보다는 텔레비젼에 얼굴을 향한 채 식사를 하던가, 신문지를 들추며 식사를 하기 때문에 침묵과 불평의 소리만 있을 뿐, 가족간의 경험을 나누어 갖는 공동체 의식은 부족하다. 가장은 가장대로 하루 일을 속으로만 되 뇌이고, 아내는 아내대로 불평을 삭이며, 자녀들은 자녀들 대로 자신의 고민을 혼자만 어루만지며 하루를 보내게 된다. 텔레비젼이나 라디오 및 신문이 대화의 실마리를 풀어 줄 수도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속마음이 담긴 진지한 대화의 시간은 빼앗아 버린다.

한국인의 텔레비젼 시청율은 95%이며, 1주일에 평균 17.5시간을 시청하는 것으로 1992년도에 조사된 바 있다. 이런 정도라면 20세에서 70세 까지 50년 동안 45,000시간을 텔레비젼에 붙어 생활하는 것이고, 이는 1,875일에 해당하고 5년 1.5개월의 시간이 된다. 이는 초.중.고등학교의 학교공부 시간인 20,000시간의 두 배가 넘는 시간으로 엄청난 양이다. 이 많은 시간을 단지 드라마나 스포츠 및 오락프로에 투자하고 있으니 텔레비젼을 바보상자라 부를 만도 하다. 여기서 텔레비젼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한 개인당 인생의 5년을 빼앗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7%의 시간이 텔레비젼을 마주한 상태에서 흘러가 버린다.

신문의 위력은 텔레비젼의 영향력 때문에 감소하고 있다. 신문을 열심히 읽는 사람은 하루에 30분 내지 1시간을 보게 된다. 보통 신문기사를 자세히 다 읽으려면 2시간이 소비된다. 하루에 30분씩 40년을 신문을 본다면 7,300시간=300일이 된다. 그래도 신문은 교양적인 내용이 좀 기사화되어 있기 때문에 유익한 면이 있다.

근래에는 비디오를 시청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스스로 원하는 프로를 선택하여 시청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수요가 증가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비디오 한편의 감상시간은 한편당 1시간 30분 정도이므로 일주일에 한편의 비디오를 30세 부터 60세 까지 보게 된다면 총 2,300시간=95일의 시간을 비디오 시청으로 보내게 된다. 이때, 1,560편의 비디오를 볼 수 있다.

텔레비젼이 보급되기 전에는 라디오를 많이 애청했다. 라디오는 소리를 방송국에서 전파에 실어 보내면 그 전파를 받아 소리를 분리하여 재생시키는 도구이다. 각 방송국에는 고유 주파수의 전파가 배당되어 있기 때문에 이 전파에 마이크로 받아 들인 음성신호를 합성하여 방송국 안테나로 보내진다. 일반적으로 전기를 띤 입자들이 진동을 하거나 가속도운동을 하면 주변 공간에 전파를 발생한다. 안테나로 보내진 합성 전기신호는 전자를 진동시켜 공간으로 전파를 발사한다. 국내 라디오 AM방송의 고유주파수는 300 내지 3,000kHz 의 전파가 배당되므로 파장의 크기는 100 내지 1,000m 의 크기를 갖는다. 이 라디오 전파는 파장이 길기 때문에 회절을 잘하므로 즉, 장애물을 잘 돌아 가므로 산골짜기나 건물 내에서 라디오를 수신할 수 있다. 라디오의 안테나에는 공중에 돌아 다니는 무수한 전파가 부딪혀 미소한 전류를 만들고 있다. 이 전류 중에서 현재 맞추어진 저항과 코일과 축전기의 조합에 의한 공진주파수에 맞는 전류만이 가장 강하게 회로를 흐르게 되고, 증폭된다. 이 신호에서 소리신호를 분류하여 스피커로 보내면 소리가 나는 것이다. 원래 AM 방송은 진폭변조란 영어의 앞 자이고 FM이란 주파수변조란 영어의 앞 자이다. FM 방송은 AM 방송보다 더 높은 80 내지 110 MHz(1MHz 는 100만 Hz)의 주파수를 고유주파수로 방송한다. 파장이 짧기 때문에 AM 방송보다 수신하기가 더 어려운 단점이 있지만 주파수가 높기 때문에 AM 방송보다 더 많은 음성정보를 즉, 인간의 가청영역의 배진동 음을 모두 방송에 실어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음악방송에 적합하다

텔레비젼은 빛을 이용하는 도구이다. 텔레비젼의 음성은 라디오방송과 동일한 방식으로 영상과는 별도로 방송하되 고유주파수대가 라디오 방송과 다를 뿐이다. 영상신호를 방송하는 방식은 라디오 방송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다만 영상신호를 만들고 수신하여 영상을 재현하는 방식이 라디오와 다를 뿐이다. 텔레비젼 방송에도 고유주파수가 배당된다. 이 고유주파수에 아이코노스코프로 만들어진 영상 전기신호를 합성하여 안테나를 통하여 공간에 전파를 발사한다. 아이코노스코프는 빛을 받은 금속이 전자를 방출하는 광전효과를 이용하여 영상을 전기신호로 변환 시킨다. 근래에는 반도체를 이용하여 영상을 전기신호로 바꾸어 주는 캠코더가 가정에 보급되고 있는데 이 캠코더로 영상 전기신호를 만들어도 무방하다. 텔레비젼 방송국에 배당되는 고유주파수는 VHF(초단파)와 UHF(극초단파)가 있다. 초단파는 주파수가 30 내지 300MHz이며 파장은 1내지 10m 인 전파이고, 극초단파는 주파수가 300 내지 3,000MHz 이며 파장은 10 내지 100cm 인 전파이다. 극초단파의 파장이 초단파 보다 짧기 때문에 장애물의 영향을 많이 받으므로 극초단파는 한정된 지역방송에 적합하다.

텔레비젼도 라디오와 똑같이 전파를 받아 들인다. 다만 영상신호를 증폭시켜 전자총에서 발사되는 전자의 운동에너지를 변화시키는데 이용된다. 이렇게 영상신호에 따라 다른 에너지를 가진 전자를 정해진 방식으로 브라운관의 평면에 주사하므로서 영상을 재현한다. 브라운관의 평면에는 형광이 발라져 있기 때문에 전자의 충격을 받으면 섬광을 낸다. 이 섬광의 밝기는 전자의 운동에너지에 비례하므로 명암이 있는 영상을 얻는다. 칼라텔레비젼에는 3가지의 형광이 각기 구별된 작은 부분에 칠해져 있다. 이 형광물질은 빨강, 녹색, 파랑의 빛의 삼원색을 낼 수 있다. 세개의 전자총으로 이들 형광물질에 각기 다른 에너지를 가진 전자를 방출하여 빛을 재현하므로 칼라 화면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한 화면을 525개의 주사선으로 구성토록 하고 있다.

 

14) 전문가가 되는 시간 - 어느 한 분야에 대한 조예가 깊은 사람을 우리는 전문가라고 치켜 세운다. 분야에 따라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의 차이가 클 수 있겠지만 몇가지 분야에 대한 전문가가 되기 위한 시간을 생각해 보자.

미술이나 음악가의 전문성을 인정받기 위한 시간은 고등학교 3학년, 대학 4년의 기간이 필요하므로 5년이 소요된다. 매일 그림을 5시간을 그리고, 악기 연주를 5시간 씩 한다면 5년간 총 9,000시간, 더 늘려잡아 10,000시간의 연습기간이 지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사실은 어려서 부터 연습을 하게 되는데 이는 전문가적 기능의 확립보다는 단순한 기능의 익힘이므로 전문가가 되기 위한 시간에 포함시킬 수 없다. 다만 어려서 천재성을 발휘하는 예능의 천재는 10,000시간의 투자를 하기도 전에 어려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지식의 전문가도 이와 유사한 기간에 전문가가 될 수 있다. 대학에서 예비의 공부를 하고 대학원에서 2년, 박사과정에서 3년의 공부를 하지만 실제적인 전문성은 2년이나 3년에 작성되는 박사학위 준비기간에 얻어진다. 그러므로 지식의 전문성 확보는 하루 10시간 씩 3년의 시간이면 충분하므로 역시 10,000 시간이 필요하다. 10,000시간은 따지고 보면 지식의 확보에 있어 아주 부족한 시간이다. 따라서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만 전문가의 칭호를 계속해서 받을 수 있다.

대체로 한 인간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0,000시간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취미로 어떤일을 시작했을지라도 취미생활의 시간이 10,000시간을 넘게 된다면 그는 이미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는 것이다.

 

15) 남아수독 5거서 - 인생은 짧고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살면서 하는 일도 한정되어 있고 경험도 제한적이다. 그러나 사람은 말과 글 및 영상으로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이나 생각 이외에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지식, 삶의 방식을 간접적으로 공유 할 수 있다. 특히 독서는 시대적인 제한도 없고 공간적인 문제도 없이 언제나 저자와 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옛부터 간접경험의 제공수단으로 가장 중요시 여겨졌다.

근래에 영상이나 그림을 통한 의사전달 방식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쉽게 얻어진 내용이 오래가지 못하여 효과에 있어서는 독서에 비할 수가 없다. 독서는 독자의 상상력과 결합한 내용이 마음의 영상을 만들고 감흥을 일으키기 때문에 독자의 사고력을 키우고 책의 내용이 자신의 것이 되기에 가치가 있다. 우리는 책을 통하여 인생을 알고 과거를 알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은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고 우리를 어디로든 보내주는 능력이 있다.

옛부터 사람은 모름지기 5수레의 책은 읽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살면서 대체 얼마만큼의 책을 읽을 수 있을까? 10세 부터 70세 까지 60년 동안 한달에 1권의 책을 읽는다고 할 때 60년 x 12권/년 = 720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 수레의 크기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720권이란 2수레의 분량이 된다. 5수레를 읽기 위해서는 적어도 1,800권의 책은 읽어야 한다는 계산이고 이는 60년간 매달 2.5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개인의 한달 독서량이 3권을 넘는 일본과 같은 나라의 국민은 각자 60년 x 12권/년 x 3 = 2,160 권으로 6수레가 넘는 분량을 평생 읽게 된다. 1권의 책을 읽는데는 분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작은 글씨에 300 쪽의 분량이라면 10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한달에 1권의 책을 읽을 경우 평생 독서로 보내는 시간은 720권 x 10시간/권 = 7,200시간 = 300일에 해당한다. 5수레의 책을 읽기 위하여는 750일이 필요 하다. 이는 약 2년에 해당된다. 8시간씩 잠을 자면서 16시간을 책만 읽는다면 3년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3년이 긴것처럼 여길 수도 있겠지만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다. 왜냐하면 이 3년동안 투자한 시간에 책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평생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서는 하면 할 수록 더욱 속도가 증가하여 한권의 책을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또 많은 독서를 하면 지식이 많아져서 정독을 하지 않아도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사람은 평생 3만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민을 교육시키기 위하여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이용하고 있다. 대학교를 제외하면 전국적으로 거의 동일한 교과서를 이용하여 전 청소년의 획일적인 동시교육이 행해지는데 국민학교에서 6년간 실제로 공부하는 교과서의 수는 약 120권 정도이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각 100권 정도의 교과서와 참고서를 공부하므로 총 320권 정도의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공부한 교과서만 모아도 1수레의 분량은 된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은 책을 읽는데만 신경을 쓸 뿐 직접 저술 활동을 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책을 저술하기는 쉬운일이 아니다. 찬사의 수식어가 부족할 만큼 훌륭한 셰익스피어는 평생 37권의 작품을 남긴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작품속에서 사용한 어휘수가 13만 단어라는 조사가 있는데 놀라운 일이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평생동안 쓰고 고치며 완성시켰다고 한다. 또한 4대 성인인 석가나 예수나 공자, 소크라테스는 책을 쓰지 않았다.

500페이지 분량의 국판 책을 저술하고자 할 경우, 하루에 200자 원고지로 10장씩 저술하면 250일이 걸린다. 책의 종류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결국 1년에 책을 한권 정도 저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전 구상이나 자료수집 및 분석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2년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책의 내용을 완성하기 위하여 평생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고민하지 않고 쉽게 쓰여진 책은 내용이 빈약하여 독자로부터 외면 당하기 일쑤이다. 양서는 독자와 야합하지 않는다. 최근에 와서 현대인이 시간이 없고 바빠서 두터운 고전을 읽을 시간적인 여유가 부족한 나머지 다이제스트판이나 짧은 글을 선호한다고 하지만 독서의 진수를 맛보려면 원본을 읽어야 한다. 독서 후의 감흥은 양서의 두께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기네스북에 의하면 세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쓴 사람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캐슬린 린제이로 904권의 책을 출간 했다.우리나라의 다산작가로는 고은씨를 내세울 수 있는데 약 100여권을 출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92년도에 우리나라에서는 2만 5천종의 신간이 발행되었고 총 발행부수는 1억4천만 권이었다. 평균 발행부수는 5,500권으로 계산되는데 64.8%가 학습참고서이고, 9%는 아동도서이며, 1,000만부 정도만이 문학도서 이다. 발행 종류는 문학이 가장 많음에도 8%의 발행부수를 차지하는 것을 볼 때 시사하는 바가 많다.

320권 분량의 교과서를 공부하는데 걸리는 시간 즉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수업을 하느라 보낸 시간은 국민학교에서 주당 평균 35시간,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주당 45시간의 공부를 하므로 방학을 제외할 때 8,400시간 + 5,400시간 + 5,400시간 = 19,200시간 즉, 대략 20,000시간의 공부를 12년 동안 하게 된다. 20,000시간은 2년 3개월에 해당한다. 하루에 8시간 잠자는 인생의 하루로 계산하면 3년 5개월이 된다. 세상을 사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지식과 자세를 공부하고 연마하는데 있어 짧은 시간이지만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다.

만약에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까지 매일 5분씩을 남보다 공부를 더 한다면 15년이므로 365x15x5=27,375분 = 456시간 =19일 이나 된다. 456시간을 더 공부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국민학교 수는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총 6,000개 정도이며, 중학교는 2,500개, 고등학교는 1,700여개가 있다. 그러므로 교장선생님이란 직함을 갖는 인원수는 총 1만 여명이 된다.

사회적인 문제를 토론하다 보면 문제의 귀착점은 언제나 교육이다. 결국 국가나 인생의 시작은 교육이며 성패의 열쇠도 교육속에 있는 것이다. 교육의 다양함이 국가나 인류사회의 다양성의 근본이며 교육의 획일화가 단순한 편식증에 걸린 국가를 만들게 된다는 사실은 사회학자들의 나찌독일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획일성은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도덕관념과 공동의식 및 함께 사는 행동양식의 체질화 교육에는 꼭 필요하지만 다른 지식이나 기술의 획득을 위한 교육에는 다양성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보여진다.

옛날에는 인근동네에서 모여든 아이들이 한자를 깨치기 위해 서당에 다녔다. 입학시기도 없고, 정규 교과란 것이 없었기 때문에 각자의 능력에 따라 진도도 다르고 배움의 깊이도 달랐다. 수업료라야 봄에 보리한말, 가을에 쌀 한 말이면 족했다. 천자문, 동몽선습 등을 공부하면 사서삼경을 공부하게 되는데 스승의 글이 짧으면 서원과 같은 큰 서당으로 유학을 가기도 하였다. 공부내용은 대부분 유교의 경전이고 시와 문학, 역사 공부가 주를 이루었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상식적인 문서작성, 의식의 예문, 격식 등은 글을 익히기가 무섭게 공부하므로 교육이 생활속에 파고드는 효과는 아주 컷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현대교육은 지나치게 지식만을 추구하므로 오히려 사회생활과는 괴리가 있으며 지식의 내용이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16) 영어와 한자 - 우리나라의 중, 고등학생은 외국어 공부하느라 애를 많이 쓴다. 수업시간으로 따져서 학교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6년간 대략 1,400시간의 수업을 받는다. 과외공부를 하는 경우는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의 공부를 하는 것이다. 하여튼 집에서 영어공부를 하루에 30분씩만 한다고 해도 6년간 1,000시간을 공부하게 된다. 도합 2,400시간을 공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막상 영어회화를 하려면 자신이 생기지를 않는다.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 가정의 대다수가 500 단어 안팎의 단어수로 일상의 언어생활을 한다고 한다. 우리가 많이 봐줘서 2,400단어를 알고 활용법만 익힌다면 유창한 영어회화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한시간에 한개의 단어만 익혀도 되는 것이다. 이렇게해서 기본적인 문장과 영어의 습성을 이해하고 나면 그 후로는 스스로도 어휘를 늘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경제적인 영어교육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한자는 우리 조상들이 즐겨쓰던 글자이다. 근래에 와서 순한글만 쓰자는 주장과 국한문 혼용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다 좋게하자는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다른 경우라 하겠다.

현재는 상용한자라 해서 1,800자를 지정해 놓고 있다. 1,800자의 한자를 음과 훈으로 기억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하루에 5자를 틈나는 대로 기억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360일 즉, 1년이면 1,800자를 모두 기억할 수 있다. 2년을 계속하면 3,600자를 기억하게 된다. 신문이나 일상생활에서 한자와 부대끼기 때문에 주장이야 어떻든 한자공부를 하지 않으면 문맹이 되므로 항상 공부한다는 자세로 지내면 문제가 없는 것이다.

한자는 상형문자이므로 그 수를 헤아리기는 쉽지 않지만 약 5만자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5세 부터 70세 까지 모든 한자를 익히고자 한다면 하루에 2자를 외워야 한다. 하루 3글자를 익히면 50세 까지 5만자를 배울 수 있으므로 한자가 얼마나 비경제적인 글자인가를 알 수 있다. 글자를 익히는 데만 한평생이 지나갈 정도이니 다른일은 언제 할 것인가.

 

17) 자동차와 시간 - 인간이 발명한 기계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어른들의 장난감이 바로 자동차이다. 합리적으로 설계된 자동차의 각 종 부품은 사용할 때마다 탄성이 나올 정도이다. 수십년동안 개선에 개선을 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근래에는 성능 보다 안전을 고려한 부품의 개발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자동차는 결국 육상 수송 수단이다. 트럭과 같은 차가 있었기에 60억 인구가 지상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에서 하루에 이동하는 인구는 2천 5백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루에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사람이 900명선에 이르고 차량은 하루에 500대가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1993년도).

아침마다 학교에 등교하든가 직장에 출근하는 경우, 거리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20세 부터 60세 까지 40년간 출퇴근 시간이 30분씩 1시간이 걸린다면 40년 x 300 일/년 x 1시간/일 = 12,000시간이 된다. 이는 8시간 근무하는 회사의 하루로 환산하면 1,500일이 되며, 1년에 300일 근무하는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자그마치 5년에 해당한다. 아침 출근은 상쾌하고 즐거워야 하는데 러시아워라 하여 차량이 만원이므로 고통스럽고 짜증이 난다.

원래, 아침은 시작을 상징하는 단어로 휴식뒤의 새출발을 의미한다. 어둠이 밀려가고 빛이 온누리를 비추면 매일같이 새로 태어나는 느낌이 새롭다. 우주의 시작도 아침에 비유된다. 신화에 의하면 천황, 지황, 인황닭이 크게 울자 먼동이 트고 바로 그때 천지왕이 해와 달을 보내 광명의 세상이 되었는데 이것이 곧 우주의 아침이다. 고조선에도 아침 조자가 들어 있어 한민족의 첫출발을 의미하고, 신라시조 박혁거세, 고구려 시조 동명왕의 이름도 아침의 빛과 동쪽에 연관되어 있다. 아침의 이미지를 담은 이름은 원효가 있다. 첫새벽이라는 뜻이다.

아침은 신이 정의를 실현하고 악을 물리치는 시간으로 보아 공포의 드라큐라도 아침이 되면 숨어 버린다. 이런 인식은 우리나라에도 많이 전해져 온다. 질병이 어두움으로 비유되어 정신병이나 장티프스에 걸리면 아침해가 뜨는 동쪽으로 뻗어난 복숭아 나뭇가지를 꺽어 환자를 때리면 병이 낫는다고 믿었다.

아침을 알리는 전령은 닭이다. 닭은 태양의 새로써 신성함과 영험이 있다고 믿어져 왔다. 서산대사가 지리산에 계실 때 의문에 빠져 고민하던 중에 친구를 찾아 마을로 내려가다가 낮닭이 크게 훼를 치며 우는 소리를 듣는 순간, 의문이 풀리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그러나 닭에 대한 금기도 많아 전라도 지역에서는 시어머니의 미움을 산다하여 며느리는 닭의 머리를 먹지않고, 경기도에서는 부녀자가 그릇을 깨지 않으려고 닭의 목이나 발을 먹지 않는다. 임산부도 닭을 먹지 않는데 아기의 피부가 닭살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닭과 지네는 상극으로 알려져 있다. 황해도 장연의 전설에 의하면 매일 아침마다 스님이 한명씩 없어지는 일이 있었다. 끝으로 5명이 남았을 때 백발노인이 나타나 흰닭 2마리를 주면서 기르라고 한 후로 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후 닭의 수효가 많아지자 밖에 나갔다 돌아오는 닭의 주둥이에는 피가 묻어 있어 하루는 스님들이 쫓아가 보았더니 닭들이 큰 굴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굴안에는 아주 큰 지네가 있었는데 닭들과 지네가 싸움을 벌여 결국은 지네와 닭이 모두 죽었다고 한다. 이런 전설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제 때, 계룡산이 있는 공주로 경부선 철로를 놓고자 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실패하였다. 그 때문에 대전이 크게 번성했다. 공주 사람들은 계룡산이 닭이고 철로는 지네이므로 공주로 철로를 놓으면 지세가 약해진다고 믿었던 것이다.

지구의 둘레가 40,000km 이므로 자신이 주행한 총거리를 4만으로 나누면 지구를 몇 회전했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자기가 운전한 거리가 10만km인 경우, 지구를 두바퀴 반만큼 주행한 것이다. 평균적으로 한시간당 60km를 주행하였다고 생각할 때 10만km는 시간적으로 100,000km ÷ 60km/시간 = 1,660시간 이 된다. 이는 하루에 10시간씩 운전만 한다고 볼 때 166일에 해당된다. 20만 km를 운전한 경우는 매일 10시간씩 1년 동안 운전하는데 시간을 보낸것과 같다.

보통의 자가운전자는 1년에 2만km를 운행하므로 30세에서 60세까지 운전을 하는 경우 60만km를 운행하므로 30년동안 운전으로 소비하는 시간은 415일이다.

이동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보통사람의 보행속도는 5km/시간 이므로 60만 km를 걸어서 이동하려 한다면 12만시간이 필요하며 12만시간은 하루 16시간씩 쉬지않고 걸을때 7,500일에 해당한다. 이는 무려 20년 6개월이 된다. 결국 자가용은 자신을 평생 동안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하므로써 20년6개월 - 1년8개월 = 19년 이나 시간을 절약시켜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차로 이동하기 때문에 절약되는 시간은 19 /1.66 = 11 이므로 차에서 보낸시간의 11배에 해당하는 이득을 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속도는 시간이며 시간은 인생인 것이다.

자동차는 현대생활의 상징이다. 자동차는 근본적으로 엔진내에서 연로를 순간적으로 연소시켜 폭발시킴으로써 피스톤의 왕복운동을 일으키고, 크랭크로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꾸어 바퀴에 전달시켜 차를 전진시키는 도구이다. 브레이크는 바퀴를 감아쥐어 차가 정지하도록하며, 악셀레이터는 연료공급의 양을 조절하여 폭발력을 변화시켜 차의 속도를 조절토록하고, 클러치는 동력을 바퀴에 이어주고 끊는 기능을 갖는다. 기어는 톱니수의 비를 이용한 일종의 지레로 바퀴에 전달되는 동력의 크기를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차를 운전하고 진행하는 도중에 갑자기 장애물이 앞에 나타나면 당황하게 된다. 그때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밟아 정지할 것인가 아니면 핸들을 돌려 장애물을 피할 것인가를 순간적으로 판단해야만 한다. 사실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이 경험에 의해서 판단하겠지만 계산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고속도로 상에서는 다른차 때문에 커브를 옆으로 틀 수는 없다. 따라서 즉각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다른 장애물이 없는 경우에도 가능한한 브레이크는 먼저 밟고 커브를 틀든가 그대로 직진하여 장애물과 충돌하든가 해야만 한다. 비가와서 노면이 미끄러운 경우에는 커브를 틀어서는 곤란하다. 항상 커브를 틀기위한 힘은 그대로 정지하는 것보다 2배의 마찰력을 더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경우, 에어 백이 설치되어 있는 차에 대하여 비교한 것이다.

어느 경우에나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움직이는 물체가 장애물에 부댈 경우 정지거리(이 경우는 차가 찌그러드는 거리)에는 큰 차이가 없으므로 속도가 2배가 되면 충격력은 4배가 되기 때문에 언제든지 속도를 줄여야 하는 것이다. 브레이크를 밟을 경우에도 조심해야만 한다. 갑작스럽게 브레이크를 최대한 밟으면 차가 미끄러지므로 타이어가 녹아서 액체막이 생겨 마찰계수가 줄어 스키드마크가 길게 생긴다. 속도가 빠를 경우에는 아무리 급해도 브레이크를 서서히 밟는 것이 정지거리를 20% 정도 단축시킬 수 있는 것이다. 또, 서서히 브레이크의 강도를 높이며 정지할 경우는 타이어와 아스팔트의 마찰계수가 0.8이지만 급작스럽게 브레이크를 밟을 경우는 정지한 타이어가 미끄러지면서 마찰계수는 0.6으로 감소한다. 하지만 급한참에 모든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기 때문에 누구나 급작스럽게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다. 따라서 위험한 곳에서는 서행하는 것이 안전운행에 최선의 방책이 되는 것이다.

자동차운전은 언제나 주의를 요하지만 운전의 테크닉은 필요한 것이다. 비탈길을 오르는 도중에 정차한 후 출발하고자 할 때, 자동기어는 문제가 없지만 스틱기어는 브레이크의 발을 바로 악셀레이터로 옮겨 가속함과 동시에 클러치의 발을 떼어야 한다. 혹은 핸드브레이크를 당긴 상태에서 출발한 후 핸드브레이크를 풀어주는 경우도 있다. 비탈길을 내려가다 보면 브레이크를 자주 밟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은 엔진브레이크를 쓰지 않는 운전습관 때문에 그렇다. 기어를 저단에 놓고 비탈길을 내려가면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커브길을 돌때 속도가 높은상태에서 커브 도중에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는 것도 전복의 위험이 있다. 뒷바퀴의 하중이 감소하여 마찰이 감소하므로 밖으로 미끄러지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커브길에 진입하기 전에 브레이크를 밟아야하고 커브를 반쯤 돌아 나올 때 가속하는 것이 안전하다. 커브길을 돌 때에 자동차 바퀴는 동축으로 이동하므로 바깥쪽 바퀴가 더 빨리 돌아야 한다. 이런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4개의 베벨기어이다. 또, 커브길의 안전을 위해서 도로의 바깥쪽 노면을 높여 원심력에 의한 차의 튕겨짐을 예방한다. 원심력의 크기도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고속으로 커브길을 도는 것은 아주 위험한 것이다. 유럽의 도로 레이스카는 엔진을 차의 중앙에 장착하는데 이는 커브를 돌 때 원심력을 줄여주기 위한 조치이다.

커브길을 돈다는 것은 차가 평면상에서 원운동을 하는 것이고, 원운동을 일으키는 힘을 구심력이라 하는데 노면과 타이어의 마찰력이 구심력역할을 하여 차가 회전하는 것이다.

미끄러운 길에서 차가 빠졌을 때, 기어를 저단에 놓을 것인가 고단에 놓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논란이 있지만 운전자 자신의 능력에 따라 기어를 놓고 출발을 하게 된다. 저단에 놓기를 주장하는 사람은 저속일 때 마찰력이 증가하는 특성에 비중을 두는 것이고, 고단에 놓기를 주장하는 사람은 회전력(토오크)을 감소시키는데 중점을 두는 경우이다. 출발시 초기 속도는 느려서 노면과 타이어의 마찰력이 최대이어야 하고, 총 회전력은 최소가 될 것이 요구된다. 따라서 두 상황이 상반되므로 적절한 선택은 운전자 자신의 문제가 된다. 회전력은 1단에서 2단으로 기어를 바꿀 때 2분의 1이 감소한다.

전방이나 후방주시는 적절한 비율로 배분하여 운전하여야 하며, 앞의 앞차를 주시할 수 있어야 하고, 추월은 완벽한 경우에만 행하고, 대형차 사이에 끼어서 소형차가 주행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사실등은 계산으로 증명되지는 않지만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가끔 자가운전자가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게 되면 불안해하고 자신도 모르게 브레이크 밟는 시늉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운전습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서로 다른 운전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도로상에서 운전하며 다니는 것인만큼 남을 믿지않고 운전하는 방어운전이 필요하다.

자동차 바퀴의 크기가 차종마다 다른것에도 이유가 있다. 자동차 바퀴는 출력에 따라 결정된다. 출력이 큰 자동차는 직경이 큰 바퀴를 사용하고, 출력이 작은 차는 작은 바퀴를 써야 한다. 자동차는 각기 출력이 일정하게 조절되므로 바퀴를 적정 크기 보다 큰 바퀴를 사용하면 각가속도를 감소시켜 커진 바퀴에 의한 진행속도의 증가효과는 상쇄되고 만다. 또 바퀴가 커지면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가므로 안정성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설계당시 출력에 맞추어 바퀴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이다.

 

'인생숫자('93년作) > 삶속의 수('93년作)'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차례  (0) 2020.05.13
3. 일상생활-생활과 먹거리  (0) 2020.05.13
4. 일상생활-숫자와 예술  (0) 2020.05.13
5. 일상생활-흥미로운 계산  (0) 2020.05.13
6. 인체와 환경-인체  (0) 2020.05.13
Posted by 다재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