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entity를 생각해 본다.  소위 정체성을 말한다. 정말로 누군가가 네 정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나의 정체를 뭐라고 답할까?  생각해 보면 상황에 따라 다양한 답변이 나올 수 있겠다. 경우에 따라 얼굴이 정체성일 수 있고, 직업이 나의 정체성이 될 수도 있고, 성격이 정체성이 될 수도 있고, 사상이나 기억 심지어는 습관이나 버릇일 수 있으며, 머리 스타일일 수 있고, 바지 색일 수도 있으며, 구두 모양일 수도 있다. 사실 머리 스타일이 흐트러지면 우리는 그걸 원래 모양대로 되돌리려고 노력한다. 남들은 별로 신경도 안쓰는데 자기 자신이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 바지를 입기도 꺼려지고, 안 신던 빨간 양말을 신기도 불편하다.

 

 사실 살면서 만들어진 단순한 색깔에 대한 기호가 자신의 옷색깔을 결정하게 되고, 남에게 받은 이미지가 작용하여 그의 구두모양을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 예를들어 불량한 사람이 뾰족한 구두를 신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그는 자신을 불량한 사람으로 간주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뾰족구두를 신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누군가 좋아하는 사람이 빨간색을 좋아한다면 그는 의도적으로 빨간색 물건을 좋아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습성이 되어 다른 색을 좋아하는 것은 부자연 스럽게 될 것이다. 누군가가 목을 꺽는 틱장애가 있다면 나중에는 틱장애가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그의 정체성이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정체성이 참으로 단순하다.    

 

 그러나 본래 자신의 정체성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전에 대학생을 가르칠 때, 지각한 학생이 자기 이름을 대면서 결석을 지각으로 정정요구하면, 나는 농담처럼 말했다. "네가 000라는 걸 어떻게 내게 증명할 수 있느냐?" 그러면 대부분 학생은 멈칫하다가 피식 웃고 만다. 어떤 학생은 학생증을 꺼내 보여준다. 그러면 나는 학생증을 가리키며 다시 말한다. "이게 너냐?" 그러면 그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자기자리로 들어간다. 사실 우리는 스스로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그저 형식적으로 서류를 통하여 입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진품을 앞에 두고도 입증서류가 있어야만 인정하게 된다.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 든다. 이것이 정체성에 대한 우리의 현실이다. 내가 학생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참 어려운 문제요 난감한 문제다. 다른 학생들에게 "내가 000가 맞지? 너희는 알고 있잖아" 라고 묻는다면 자신을 자신이 입증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이 나를 입증하는 꼴이 되지 않는가? 참 난감하다.

 

 따라서 자신을 000라고 확신시키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방법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 기억으로 입증하던지, 서류로 보이던지, 000에게 관련한 버릇이나 특징을 활용하고 심지어는 타인의 기억속에 각인된 이미지를 통한 동의를 구해야 한다. 더하여 지문이나 홍채나 DNA 분석 데이타를 기억시킨 디지털 기기의 도움으로 자신을 입증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마치 범죄를 입증하는 것처럼 자신을 입증해야 한다.  

 

 또, 진취적이고 혁신적인 변화를 취하려면 바로 자신을 가두고 있는 정체성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결국은 정체성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안다면 정체성의 속박을 깨트리고 재정립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정체성의 속박은 남의 이미지속에 들어 있다고 믿겨지는 나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추구하는 정체성의 변화 방향이 선한 것이라면 남들도 환영할 일이므로 남이 나를 어찌 생각하든 주저없이 바꾸도록 노력하면 될 것이다. 

 

 

                              ---------------------------- by  Dajae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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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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