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결혼도 포기하고 자식도 포기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널리 번지고 있고, 더 심해지고 있다. 자식을 두고자하는 갈망이 생명에 대한 집착보다 더 강할 수도 있는데 그런 본능적인 상황 마저 저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DNA에게 암암리에 조정당하는 생명체로써의 인간의 반란인가? 신의 능력을 가졌다는 우월감에 빠진 인간의 착시적 오기인가? 아니면 나약한 낙오자, 무능력자의 본능에 대한 자살행위인가? 그저 난감하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사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인간은 우수한 뇌를 갖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 다른 생물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엄청난 착각이다.

 

 식물은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가? 봄이면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녹음으로 온 세상에 생명의 합창이 울려 퍼지게 하며, 가을에는 열매를 맺고 생의 마감을 묵상하는 상징인 낙엽으로 온 세상을 물들이며, 겨울에는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겨울에는 특히 죽은듯이 웅크리고 있는 듯 하면서도 부름켜 세포분열을 계속함으로써 나이테를 만든다. 시간을 재고 있다. 하여튼 식물들은 세월에 몸을 맡기고 그저 아무 의식도 없이 살아 가는 생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생각하고 전체 조직을 운영하는 동물의 뇌와 같은 기능을 갖는 기관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식물이 그저 삼투압현상이라는 물리화학적인 방법으로 물과 양분을 뿌리로 흡수하고 잎에서는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메카니즘에 따라 탄소동화작용으로 태양에너지를 저장하는 단순한 생물체로 생각한다. 

 

 그러나 식물이 엄청 대단한 화학공장이라는 사실은 잠시 접어 두고라도, 단순히 몇 몇 식물들의 씨앗을 널리 퍼트리려는 전략을 살펴만 봐도 식물이 의식없이 단순히 진화한 생물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실 많은 식물이 열매를 만든다. 열매의 과육부분은 식물에게 필요하지 않다. 배아와 배젖만 있으면 된다. 그럼에도 과육을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동물에게 과육으로 먹이를 제공함으로써 과일 열매를 먹은 동물이 멀리가서 씨앗을 배설하여 퍼트려 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열대 밀림이 번성하게 된 이유중 하나가 박쥐의 역할이다. 아무튼 식물은 씨앗이 여물기 전에는 동물이 열매를 취하지 못하도록 맛이 없는 상태를 유지한다. 씨앗이 여물어야 과즙에 향기와 맛을 만들어 동물이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한다. 이런 사실만 보아도 식물은 동물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으며 그 동물들의 섭생과 신진대사, 그에 관여하는 화학물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씨앗의 껍질은 소화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봉선화나 물봉선화는 씨앗을 꼬투리의 순간변형을 이용해 멀리 튕겨 나가게 한다. 참으로 긴 긴 세월 동안 심사숙고하여 고안한 결과라고 볼 수 있지 않는가? 식물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심사숙고가 하나의 고안을 낳고, 그 고안이 현실화 되기를 바라는 간절하고 간절한 염원에 의해 식물의 DNA의 변화를 초래하는게 아닌가 싶다. 진화의 메카니즘의 중심에 염원이 있다는 생각이다.  

 

                              [물봉선화 씨앗 꼬투리; from http://blog.daum.net/yh584275/14272383]

 

 잘 알려진 민들레 씨앗이나 박주가리 씨앗은 바람을 이용하여 씨앗을 멀리 날아가게 한다. 방사상으로 퍼진 보드라운 솜털에 씨앗이 달려 있어서 바람이 불면 바람따라 날아간다. 공기의 흐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씨앗의 털을 만든다는 사실이 놀랍다. 씨앗의 무게와 털에 주어지는 공기의 부력, 털의 재료 등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심사숙고와 염원이 있었겠는가? 저울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에서 씨앗의 털을 발명해 냈으니 말이다.

 

                         [민들레 씨; from pixabay.com]                        [박주가리 씨; from wildflower.kr]  

 

 단풍나무 씨도 헬리콥터의 날개와 같은 회전날개가 있다. 씨앗이 나무에서 분리되면 날개에 부딪히는 공기에 의해 단풍나무 씨가 회전하기 시작한다. 1분에 1000번 이상을 회전한다는 연구가 있다. 그러면 바닥까지 낙하시간이 길어진다. 날개가 없다면 자유낙하를 할 것이다. 단풍나무 씨는 보통 바람이 불 때 나무에서 이탈할 것이다. 이 때 날개의 회전으로 낙하시간이 길어지면 바람에 의해 횡으로 더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단풍나무는 바람을 알고 있었다. 사실 단풍나무 씨앗의 운동에 대한 세계의 많은 물리학자들의 연구 논문이 발표 되어 있다. 날개의 회전에 대한 운동 방정식의 해는 난해하다.  

 

 씨앗을 멀리까지 퍼트리기 위한 식물의 노력은 참 경이롭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에는 노란 황금비를 내린다는 모감주 나무가 해안선을 따라서 분포해 있다. 중국으로부터 씨앗이 바다로 이동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모감주나무는 가을이 되면 씨주머니 안에서 3내지 4개의 씨앗이 익는다. 모감주 씨 주머니는 세 조각이 세로로 붙여져 있는 형상인데 씨주머니가 벌어지면  마치 씨를 실은 배와 같다. 모감주 씨는이런 배 모양으로 바다에 떨어져서 해류와 파도를 타고 멀리까지 이동하게 된다. 

 

              [모감주 나무; from www.cnculture.or.kr]             [모감주 나무의 씨앗과 배 모양 씨주머니]

        

 모감주 씨는 단단해서 염주알로도 사용된다. 아무튼 모감주 나무는 해류와 파도를 이용해 씨앗을 널리 먼 대륙까지 전파 시킬 수 있는 배를 만들어 냈다. 설계도도 없이 씨앗을 실은 배를 만들 생각을 어떻게 했단 말인가? 이는 모감주 나무만의 엄청난 염원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바닷물에도 끄떡없는 씨앗의 껍질까지 발명해 낸 것을 보면 식물이 생각없다는 말은 쉽게 할 수 없다. 물론 식물에 뇌는 없다. 그러나 뇌가 없다고 생존에 대한 또, 종족 보존에 대한 고민을 안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분명히 식물도 환경의 이용과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방책을 도모하고 그 도모한 결과로 진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식물은 어떻게 무엇으로 심사숙고하고, 간절한 염원으로 DNA까지 변화 시키는 것인가. 그것은 식물 전체의 시스템이 동물의 뇌와 같이 작동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 by  Dajae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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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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