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경제에 대하여 논하라는 사법고시 문제에 대한 답을 衣食住라고 답해서 누군가가 합격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대로 소박하고,  낭만이 조금은 살아 있던 시절의 추억이 아닐 수 없다.  예전에는 정말이지 衣食住만 해결되면 만사가 다 해결되는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은 인간의 삶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말해 준다.  衣食住의 순서만으로도 삶의 패턴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중국인은 食住衣로써 순서가 우리와 다르다. 食을 우선으로 한다. 일차적으로 모든 생물은 생존하기 위해서 먹어야 한다. 먹어야만 살아남는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고, 종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지구 상의 대부분 생물들이 집과 옷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먹는 일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食을 중시한 중국인들이 8000여 종이나 되는 주식용 음식을 개발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衣를 맨 앞에 둔다. 이 단순한 문제가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든지 우리의 삶의 자세에 영향을 주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분위기나 구조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놀랍다.  옷은 인간만이 만들어서 입는다. 처음에는 체온을 유지하고, 자외선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입었겠지만 나중에는 신분을 나타내고 멋을 부리는 도구의 의미가 더 더해졌다. 그러므로 옷을 보고 옷 입은 사람을 평가하고 어떤 부류,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단정하는 사회가 된 듯하다. 옷을 중시하는 이런 의식이 본질보다는 겉모습이나 상태, 혹은 피부색, 즉 비본질적인 요소로 사물이나 사람의 본질을 판단하는 분위기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이유로 과대포장의 상술이 만연하고 껍데기에 신경 쓰고, 나아가 거짓이 진실에 큰 상처를 주는 세상이 되었다.   

 

  하여튼 집, 즉 住는 우리나 중국이나 두 번째로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지상의 모든 동물은 먹는 일이 해결되면 종족보존을 위해 새끼를 키울 보금자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종들이 집을 마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많은 곤충류가 번데기가 유화할 때까지 보호받을 고치형의 집을 필요로 하고, 많은 포유류가 동굴에서 살거나 굴을 뚫어 보금자리를 만들고 새끼를 기르고 있다. 하지만 정교함을 생각하면 조류의 집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 조류는 알을 낳아 부화하고 부화한 새끼를 육추 하기 위해서 견고하면서도 천적에게 발각되지 않을 은밀한 장소를 찾아 둥지를 만든다. 새끼는 모두 약하기 때문에 맹금류도 절벽의 돌출부나 높은 나무 위에 둥지를 만든다.  

 

  사실은 새집 이야기를 하고자 시작했는데 옷 이야기를 너무 길게 말한 것 같다. 어렸을 때에 동생과 함께  소 풀을 베러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많은 새들의 둥지를 발견했고, 또 높지 않은 곳에 있는 둥지는 직접 올라가서 알이 몇 개인지 세어보기도 하고, 새매 새끼를 집으로 데려와서 개구리를 잡아 먹이며 기르기도 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새매를 보기조차 어려워졌다. 새매는 나무 위에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얹어서 둥지를 만든다. 그러고는 그 나뭇가지 위에 알을 낳아 부화시킨다. 새매는 한 번에 2 내지 4개의 알을 낳아 부화한다. 새끼는 흰 솜털로 싸여 있고, 부리는 새까맣다. 새매 집 주변의 나뭇잎 위는 흰 석회 물을 뿌린 것처럼 새매 새끼의 변이 묻어 있다. 새매 새끼들은 항문을 높이 쳐들어 물총을 쏘듯이 흰 물변을 배변한다. 비둘기도 나뭇가지를 엉성하게 얼기설기 올려 집을 짓는다. 나뭇가지를 많이 올리지 않아 새집으로 눈치채기가 쉽지 않다. 특히 산비둘기는 꼭 2개의 알을 낳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비둘기 집(http://blog.naver.com/kbd357)과 새매 집(EBS)

  집을 깔끔하게 멋지게 짓는 새는 꾀꼬리로 기억된다. 꾀꼬리는 수컷이 멋지게 우는 바람에 꾀꼬리가 되었다. 암컷은 그야말로 근래에 개체수가 급격히 증가한 직박구리처럼 멋없는 울음소리를 낸다. 아무튼 꾀꼬리는 고구려 유리왕의 황조가(黃鳥歌) 때문에 유명해졌듯이 노란색을 띠고 있다. 꾀꼬리는 특히 Y자 모양의 높고 가느다란 참나무 가지에 둥지를 매달듯이 짓기 때문에 천적이 접근하기 어렵다.   

 

꾀꼬리 집(http://cafe.naver.com/eoec/423)

   딱따구리는 나무에 구멍을 내고는 그 안에 부드러운 풀로 둥지를 만들고 산란과 육추를 한다. 보통은 죽은 나무에 구멍을 뚫지만 가끔은 살아있는 단단한 참나무를 뚫어 둥지를 만들기도 한다. 딱따구리의 부리가 보통 단단한 게 아니다.  그런데 미국의 조류학자들은 하루에 만여 번이나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의 뇌가 말짱한 사실에 주목했다. 연구 결과 뒤 퉁수 부근에 밴드 형태의 탄성체가 뇌에 가해지는 충격을 완충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아무튼 딱따구리는 죽은 나무줄기 속에 숨어있는 애벌레를 잡아먹는데, 어떻게 애벌레를 찾아내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부리로 나무를 쪼을 때 나는 소리로 알아내는 것이 아닌가 추측만 할 뿐이다.  예전에 시골에는 관개를 위해 작은 보(湺)를 많이 만들었는데 그런 보에는 예쁜 색을 띤 물총새가 많았다. 물총새는 수면 위의 나뭇가지에서 물속을 응시하다가 공격할 물고기가 정해지면 그야말로 총알처럼 물속으로 날아 들어가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총새는 흙 둔덕이나 흙으로 된 물가의 비탈면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둥지를 만들었다.

 

딱따구리 집(http://center.forest.go.kr)과 물총새 집(http://cafe.naver.com/dongovi/18795)

  예전에는 시골에 꿩이 많았다. 겨울에는 꿩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마늘밭을 덮은 볏짚을 마구 헤집어 먹이를 찾는 모습이며, 양지바른 숲을 지나려면 갑자기 푸드덕하며 날아가는 꿩 때문에 깜짝 놀라던 경험이 있다. 그럴 때 '꿩'하고 외마디 소리를 내면서 꿩이 날아갔다.  당시 시골의 한 두 사람은 싸이나(청산가리)라고 하는 독극물을 속을 파낸 콩이나 찔레 열매로 꿩을 잡기도 했다.  그때 들었던 바로 꿩고기 맛은 신맛이 난다고 했다.  아무튼 늦은 봄이나 초여름에 낮은 야산에 가서 꿩의 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억새 숲에 풀잎을 끌어내려 엉성하게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은 경우도 보았다. 꿩은 둥지 하나에 10여 개의 알을 낳고 부화한다. 까투리가 꿩병아리를 떼로 이끌고 숲을 헤집고 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때 꿩병아리가 매우 민첩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이야 새를 보호하려는 생각이 가득하지만 어릴 적에는 새를 잡아 구워 먹고자 하는 본능이 컸다. 겨울에 초가집 처마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잠자는 참새를 손전등으로 비추면서 손을 넣어 잡았고, 새잡는 새 덮치기라는 도구를 만들어 눈 덮인 들판에 볏짚을 펼쳐 새를 유인하여 잡기도 했다. 참새나 묏새는 날갯짓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슴살이 잘 발달되어 있다. 나중에는 새를 잡는 산탄 공기총을 갖고 전문적으로 새를 잡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압축공기로 산탄을 발사하는 구조라서 수시로 고리를 발로 밟고 총을 위아래로 펌프질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잡은 새를 도시의 참새구이 포장마차에 팔았다.   

직박구리집과 꿩의 알

  지금은 새들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새들이 집을 지을 때 얼마나 심사숙고하는지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절대로 본능에 입각해서 집을 짓는다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봄이 되면 새들은 어디에 둥지를 마련할 것인가를 두고 참 많은 곳을 방문하고 탐색한다. 우선은 천적으로부터 발각되지 않을 은밀한 곳을 골라야 한다.  빗물의 피할 수 있는 곳도 필요하다. 새들은 탐색을 하다가 적당한 자리를 찾으면 괜찮다는 판단을 내리고 암수가 합의하여 최종 결단을 한 후에 집 짓기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집을 짓는 재료는 주변에서 그때그때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여 선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숲 속의 새집은 숲에 있는 재료만을 사용하고, 알자리만은 이끼를 놓아 정리한다던가, 부드럽고 섬세한 재료로 마감한다. 또, 사람 사는 주변에 둥지를 트는 새들은 날아다니는 옷감이나 비빌 조각으로 집을 짓기도 한다. 비닐을 집 짓는 재료로 선택한다는 것은 새들도 어떤 판단을 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오목눈이 집의 겉과 안

   이른 봄에 딱새가 바위틈에 둥지를 틀고 부화한 새끼들을 기르느라고 부리에 벌레를 몇 마리씩 물고 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얼마나 바쁘게 벌레를 잡아들이는지 암수 어미새가 번갈아 10여분 사이마다 벌레를 잡아 온다. 게다가 어미 새들은 잘 먹지도 않는지 깃털도 부실해 보이고 무엇보다 몸이 바싹 말라 보인다.  부모의 자식사랑이 딱새에게도 분명하고 또렷하게 엿보인다. 어미가 저렇게 새끼를 보살피고 길러주니 새끼들은 둥지에서 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통해 둥지 밖의 세상을 상상하며 나중을 꿈꿀 것이다.

 

담쟁이에 가려진 딱새 집(시계 방향으로 딱새집에 근접한 사진)

  근래에 딱새 집을 발견하여 사진을 찍는데 어미 새들이 주변에서 경계음을 내면서 이쪽저쪽으로 날아다니면서 안절부절못한다.  그 소리나 행동에서 불안함이 전해온다. 평소에는 딱~ 딱 하며 낮은 소리를 내는데 다급할 때는 째재재잭 하면서 다급한 심정을 드러낸다. 새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하여튼 이번 봄에 분명하게 확인한 사실은 새에게도 감정이 있고 판단력이 있다는 것이다. 누가 동물들에게는 본능만 있다고 했는지 참으로 멍청한 동물학자나 심리학자가 아닐 수 없다는 측은한 생각이 든다.

 

        -------------- by  Dajae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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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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