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한 번 자리를 잡으면 평생을 그 자리에서 살아야 한다. 이동할 수 없다. 뿌리를 땅속에 박고 물이나 여러 종류의 미네랄, 유기물 성분을 흡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무야 말로 씨앗이 어디에 자리를 잡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좌우되는 생물이다. 기름진 땅에 양지바른 곳으로 밀려온 씨앗은 화려한 일생을 살 것이요, 어쩌다 큰 나무 그늘에 싹을 튀운 나무는 비실비실 살다가 햇볓 한 번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큰 바위나 돌, 마른 풀 위로 떨어져 아예 싹을 틔우지 못하는 씨앗이 싹을 틔우는 씨앗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나무나 풀과 같은 식물이야말로 숙명에 순응하는 생물로 간주된다.
그러나 식물이 주어진 환경에 단순히 순응만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순응과 함께 역경에 대항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제로 나무를 적당하게 밀식하면 어느 정도 옆의 나무 가지와 접촉하지 않으려고 나무가 서로 간섭하지 않는 공간으로 가지를 뻗는다. 공존의 전략을 구사해도 충분한 공간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촉감으로 판단하는 것인지 아니면 서로 분비하는 화학물질의 영향으로 기계적인 반응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나무를 아주 가깝게 밀식하면 더 이상의 공존전략은 없다. 서로 햇볓을 받기 위한 공간쟁취의 경쟁이 심화된다. 아마도 서로간에 공격 화학물질을 분비하여 서로가 상당한 고통, 생존의 장애를 받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식물의 군락지가 형성되면 다른 종이 그 안에서 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소나무가 솔잎의 독성으로 다른 식물이 자기 그늘에 정착하는 것을 막는 것도 같은 전략일 수 있다.
기생 식물을 제외하고는 모든 식물이 땅에 뿌리를 박고 서있다. 뿌리의 역할은 줄기를 고정하고, 지탱하기 위한 물리적 기능도 있지만 더 중요한 기능은 수분을 흡수하고 영양소를 흡수하는 기능이다. 땅속에 어느 일부분에 동물의 사체가 놓여 있는 것을 뿌리가 감지하면 그 부분의 뿌리가 왕성하게 실뿌리를 만들어 유기물을 더 많이 빨아들이도록 변화한다. 놀라운 반응이다. 실제로 나무 근처에 두엄탕을 만들면 두엄탕쪽으로 뿌리가 접근하여 두엄의 위쪽까지 실뿌리가 실타래를 만들듯이 얼키고 설킨 모양으로 성장한다. 그래서 옛날부터 시골의 두엄탕 근처에는 나무를 심지 않았다.
아무튼 식물의 뿌리는 다양한 양분을 저장하는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연근이나 고구마 등이 녹말 성분을 뿌리에 저장한다. 그런데 녹말은 식물의 잎에서 광합성작용으로 만들어진 당의 고분자 탄수화물이라고 잘 알려져 있으므로 별 문제가 없지만 탄수화물 이외의 다양한 식물의 성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한약재로 사용되는 여러 식물의 뿌리와 독성을 갖는 뿌리의 다양한 화학성분들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 것인가? 나는 뿌리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식물의 엽록소에서 광합성 캘빈회로로 탄수화물을 만들고 이를 열매에 저장하는 경우는 열매에서 DNA의 작동으로 다양한 화학성분의 물질을 만들겠지만 뿌리에 저장할 때는 당연히 뿌리에 있는 세포 DNA의 작동으로 탄수화물이나 뿌리로 흡수한 유기물, 무기물 등을 이용하여 식물이 원하는 물질을 만들어 낸다고 본다. 왜 식물들이 각기 다른 화학성분의 물질을 만드는지는 생화학자들이 밝혀야 할 사실들이다.
[그림 1] 층층나무 수액(가지 자른 2주 후)
콩과 식물이 뿌리혹박테리아의 도움으로 질소(N) 고정하여 식물성 단백질을 만드는 경우와 같이 식물 뿌리가 식물의 잎처럼 화학공장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3월 초 경에 고로쇠를 채취하는데 이는 뿌리로부터 줄기로 수분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뿌리에 저장되어 있던 당류가 함께 채취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잎이 아직 돋아나지 않았을 때이므로 당류가 잎으로부터 뿌리쪽으로 공급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잎이 돋아날 때쯤에 층층나무의 가지를 자르면 15일 정도나 주황색 액체(그림1 참조)가 계속 흘러 나온다. 이 수액(樹液)은 분명히 고로쇠 수액처럼 뿌리에서 올라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황색의 층층나무 수액도 뿌리에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가 지난 후, 한 여름에는 가지를 잘라도 수액이 흘러 나오지 않는다.
--------------------------- by Dajae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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