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다재헌에서 시간을 보낼 때, 옷깃에 붙여 지은 호리병벌의 흙집을 발견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항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형을 마치고 그늘에서 말려진 상태, 유약을 바르기 전 단계의 작고 예쁜 항아리였다. 

 

                                                   [그림1] 호리병벌의 항아리 집(길이: 2.5cm)

 

 어린 시절에 여름날 시골길에 나나니가 땅에 파놓은 구멍을 많이 보았다.  할미새가 꼬리를 촐싹거리는 것처럼 나나니는 배를 위 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열심히 구멍을 판다. 구멍을 파는 나나니가 참 신기했다.  만약 내가 땅을 파서 나나니 집을 확인했더라면 나는 아마도 파브르같은 곤충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는 순진하게 땅바닥에 구멍을 내서 집을 짓는 나나니를 보면서 나나니가 더운데도 참 열심히 일한다는 생각과 비가 오면 어쩌지? 하면서 걱정을 했다. 나나니가 할 걱정까지 내가 걱정했으니... 

 

 1970년대만해도 땅에 구멍을 뚫고 흙속에 사는 벌레도 참 많았던 것 같다. 시골 마당의 약간 습한 곳에는 다양한 크기의 벌레들 구멍이 많았다. 그 많던 다양하고 조용하던 벌레는 다 어디로 갔는가? 마치 어린시절이 증발된 것처럼 아쉽다. 아무튼 나나니는 땅에 구멍을 뚫은 후에 다른 벌레를 구멍 안으로 끌고 들어가서는 거기에 알을 낳는다. 그런데 이 호리병벌은 내 옷에 항아리집을 만들어 놓았다.  이제 곤충을 잡아다 놓기만하면 되는 단계인데 그만 나한테 발각되어 집까지 잃어 버렸으니 안됐다. 그렇지만 호리병벌집이 너무 앙증맞아서 나는 지금도 책상에 둔채로 가끔 병을 불듯이 호리병벌 흙집을 들고 불어서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림2] 흙을 물고 있는 호리병벌

 

 나는 호리병벌집을 발견하고는 바로 수돗가로 갔다. 호리병벌이 흙을 가져갈 만한 곳에 앉아서 기다리니 아니나 다를까 벌이 나타났다. 입으로 흙을 물고 날아가려는 장면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을 수 있었다. 호리병벌은 분명히 물로 이겨진 흙을 입으로 물고가서 집게입으로 항아리집을 지을 것이다. 집게입을 집 안팎에 한쪽씩 대고 항아리벽을 만들어 갈 것이다.  마치 말벌이 집을 짓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지을 것이다.

 

[그림 3] 말벌집

 말벌집을 보면 몇 단의 내부 육각 구멍을 가진 벌집을 만들어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면서 그 벌집 주변을 환기구가 있는 둥그런 외곽집으로 둘러 싼다. 우리가 보는 집은 말벌의 외곽집이다.  말벌의 안쪽집은 여느 벌집처럼 입에서 나오는 밀납 계통의 분비물로 집을 짓지만, 외곽집은 나무의 표피나 죽은 나무의 목질부나 흙을 입의 분비물로 이겨서 역시 집게입을 이용하여 집을 짓는다. 그러므로 말벌이 선택한 목재의 종류나 표피, 목질부, 흙의 색깔에 따라 말벌집의 외곽색이 다르고 부분적으로도 색이 다르다.

 

                                                            [그림4] 도자기급 흙집

 

 다시, 며칠 후 소나무를 전지하던 중에 솔잎에 붙은 또 다른 종류의 호리병벌의 흙집을 찾았다. 아주 작은 흙집인데 이것도 벌레를 잡아다 넣기 직전의 집이었다. 이것도 호리병 벌집은 분명하지만 그 집의 표면이 앞에서 언급한 호리병벌의 항아리보다는 한 차원 업그레이드 된 집이다. 집게입으로 지었겠지만 표면에 돌기가 형성되어 있고 더구나 집의 입구를 정교하게 잘 만들었다. 앞의 호리병벌의 흙집이 항아리라면 이 집은 도자기 수준이다. 참으로 놀라운 능력을 가진 이 이름 모를 종류의 호리병벌에게 나는 경의를 표했다.

 

                                           ------------- by  Dajae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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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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