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인간들은 굴속에서 생활하였다. 언어도 단순하고 오락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때 인간들에게 잠이란 병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밤이 되면 하는 일없이 모닥불 옆에 앉아 긴 밤을 지새웠다. 그러던 중에 선각자가 최초의 오락을 하나 고안하게 되었다. 모닥불 옆에 큰 돌을 놓고 다른 돌을 던져 맞추는 단순한 돌치기 놀이였다. 요즈음의 구슬치기와 유사한 놀이였다. 밤마다 정기적인 행사처럼 돌치기는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닥불을 쬐던 사람이 돌치기 돌에 머리를 맞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야!"

선각자가 그 소리에 영감을 얻었다.

"아야 라구? 돌에 머리를 맞으면 아야구나. 그러면 돌로 짐승들을 아야 시키자!"

이튿날부터 돌을 던져 사슴을 잡을 수가 있었다.


 

돌치기는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던진 돌이 큰 표적 돌에 맞으면서 깨졌다. 그 때 깨진 돌을 치우던 사람이 깨진 돌날에 손을 베면서 피를 흘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야!”

선각자가 그 소리에 또, 영감을 얻었다.

“깨진 돌도 아야구나. 그러면 지금부터 깨진 돌로 짐승들을 아야 시키자!”

이튿날부터 깨진 돌의 날을 이용해 고기를 절단할 수 있었다. 최초의 돌 칼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후세의 역사학자가 이름붙인 '타제석기' 시대가 개봉 되었다.



 

그날 밤, 먼곳에 나갔던 한 키작은 사내가 이상한 동물을 보았다고 설명하려 했으나 말이 부족하여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옆에 있던 붉은 돌을 들어 벽에 문지르는 방법으로 그 동물의 형상을 그림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벽화가 탄생하는 순간이며, 도구가 탄생하는 역사적인 전환점이 이처럼 의식이나 소리없이 조용히 인류를 찾아 왔다.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역사는 역사 아닌 시대에 이루어졌다.'

벽에 돌을 문지르다보니 돌이 닳아서 붉은 돌의 모양이 변하였다. 이를보고 선각자가 또, 영감을 얻었다.

 

"돌에 돌을 비비면  '돌'에서 ‘ᄅ’이라는 돌가루가 떨어져 '도(刀)'가 된다!"

이튿날 그들은 냇가에 앉아서 선각자의 지시대로 돌에 돌을 문질러 돌칼을 제작할 수 있었다. 후 대의 역사가들이 이름붙인 '마제석기' 시대가 개봉 되었다.

 

 마제석기는 인간 집단의 사회적 구조까지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까지는 짐승을 잡는데 협동력이 필요했지만 돌칼과 돌화살이 만들어진 이 후로 개인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사냥과 싸움을 잘하는 능력있는자에게 추종하는 세력과 아부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능력있는자에게 붙어살면 먹는 문제, 적으로부터의 생명 보호는 해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능력있는자가 한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결국은 권력이란 무형의 힘이 인간사회속에 뿌리 내리게 되는 사건이 벽화로부터 나오게 된 것이다. 권력은 무엇인가? 사적인 모든 것을 집단으로 귀속시키고 그 집단에 속한 모든 것을 소유, 운영하는 힘이지 않는가? 집단이 커지면서 우두머리는 왕으로 황제로 변경되었을 뿐이다.  


 아무튼 이튿날부터 마제돌칼을 사용하여 사슴의 가죽을 벗길 수 있었다. 그동안 털이 없어 주눅이 들었던 인간들은 이제 당당히 숲에서 광야로 생활의 본거지를 바꿀 수 있게 되었으며, 호랑이 가죽옷이냐? 토끼 가죽옷이냐에 따라 신분도 구별되는 시기가 되었다. 사슴 가죽은 또한 북이 되었다. 비로소 인간 무리속에 악기소리가 울려 퍼지게 되었다. 칼에서 음악이 탄생한 것이다. 즉, 미술이 칼을 만들고 칼이 음악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며칠 후, 키작은 사내는 완성시키지 못한 벽화에 사슴뼈를 백묵처럼 사용하여 흰색으로 채색을 하였다. 그림을 완성시킨 사내는 옆에 있는 사내를 사슴뼈로 어깨를 쿡쿡 찌르며 '이렇게 생긴 짐승이야'란 뜻으로 그림을 가리켰다. 그때, 옆사람은 그림을 보기는 커녕 "아야!"하며 소리쳤다. 어깨에서 피가 흘러 내렸다. 선각자가 또, 영감을 얻었다.

"뾰족한 뼈도 아야구나!"

이튿날 뼈를 이용한 정교한 화살과 낚시 바늘이 만들어 졌다.



역사의 수레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이때 여자들은 위기를 느끼게 되었다. 그때까지 열매를 따먹던 채식사회의 가장권이 육식사회로의 이행에 따라 남자에게 넘어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육식사회는 남자의 근육을 필요로 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자들은 가장권을 잃고 체면도 버리게 되었다. 먹이 앞에서 체면을 차릴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고기를 얻어먹기 위해서 힘센 남자의 등도 긁어주고, 애교도 부리면서 육식사회에 적응해 갔다.



큰 짐승을 잡아오면 며칠씩 먹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남은 여가 시간이 많아졌다. 잠도 없던 시절이라 여가시간에 주변청소를 하는 여유도 생겼다. 어느날 산머루며 포도의 껍질이 버려진 바위에 뚫린 작은 웅덩이에  비가 내렸다. 목마른 한 사내가 웅덩이 물을 마시고 이상한 행동을 했다. 선각자가 또, 영감을 얻었다. 술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돌치기는 유치한 놀이라서 애들이나 가끔 오락으로 즐기고 어른들은 술을 마시며 여흥을 즐기게 되었다.

 

 

그러나 매일 저녁, 노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여흥이 있은 후로 더 이상 필요한 것도 없어졌다.  역사는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다만 육식을 하다 보니 치주염을 앓는 환자가 늘어나게 되고, 그들은 힘없이 모닥불에 둘러 앉아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저 멍하니 앉아 있다 보니 정신을 잃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소위 '기절'하는 것이었다. 기절했다가 깨어보면 아침이었다. 저녁이 되면 또 다시 기절하는 일이 반복됐다. 매일 밤의 기절은 그들을 당황케 하고, 심지어 기절할 때 쓰러지면서 돌에 머리를 부대껴 뇌진탕으로 죽는 경우도 생겨났다.

선각자가 고민을 하다가 묘안을 떠올렸다.

"이러다가 모두 죽어 나가겠구나. 앞으로 기절하기 전에 미리 누워 있으면 돌에 머리를 부대서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밤이 되면 모두 누워서 기절하자!"

그 때부터 누워서 멍때리게 되었고 누워서 기절하게 되었다. 그 후로 기절은 습관성 질환이 되었고, 습관성 질환은 다시 잠복성 질환이 되었으며, 지금은 인생의 삼분의 일을 무의미하게 낭비하는 의식하지 못하는 무서운 잠이라는 당연한 습성이 되었다. 즉, 인간의 잠은 저녁을 배불리 먹고 멍때리다가 정신줄을 놓아버린 기절에 그 뿌리가 있다. 결국, 인간의 잠이야 말로 조상들이 물려준 최악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위 이론의 정당성을 고증 받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돌베개가 발견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고고학계에서 돌베개를 발견했다는 소식은 없고, 전 세계의 어느 박물관에도 석기시대의 돌베개를 전시한 곳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분발해야겠다. ㅎㅎ.

 

               ----------- by  Dajae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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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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