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알드레드                                                         다재헌 역 

 

 

 

마이크나 레코더, 앰프, 필름이나 원판용 축음기 분야에 대한 소리의 역사는 연도별로 잘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영화용 라우드스피커에 대한 발전사는 정보의 부족으로 연결고리가 희미하다. Hepworth, Lauste, Poulsen, Engl, Vogt 와 같은 대부분의 초기 발명가는 앰프가 발명되기 이전이라서 스피커에 대한 연구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녹음법과 영상과 음성을 일치시키는 일에 매달렸다. 잘 알려진 이러한 사실들을 여기에 적어본다.


             

 

  

 

              ========================================

                             1896년

 

상업적으로 유성영화를 처음으로 선보인 사람은 아마도 Thomas Edison일 것이다.  Edison은 뉴욕의 작은 촬영실에서 가진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영화시사회에서 원통형 포노그래프(phonograph)를 그의 새로운 활동사진 영사기인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에 연결하였다. 소리는 실린더에 기록된 굴곡을 따라 축음기 바늘이 움직임에 따라 진동하는 진동판에 튜브를 연결하여 스테쏘스코프(stethoscope)와 같은 방법으로 듣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소리가 너무 작고 단어를 분별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이 장치를 “아주 작은 목소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금속 혼(horn)을 달아도 별로 효과가 개선되지 않았다.                                                 

 

              

            ========================================

                             1903년

프랑스의 기술자인 Leon Gaumont는 베를린 사람들의 그라모폰(Gramophone)에 이용된 디스크(disk)형 유성영화에 라우드스피커 시스템을 적용하는 기술로 특허를 받았다. 그는 처음으로 라우드스피커를 스크린 뒤에 설치하고 영상에 따라 작동되도록 하는 방법을 제안하였다. 같은 해에 독일의 Oscar Messter는 특수한 스피커에 적용하는 압축공기 앰프를 이용하는 새로운 옥스테폰(Auxtephone)으로 특허를 받았다.

 


              ========================================

                             1907년

예일대학을 졸업한 Lee de Forest 박사는 획기적인 전자 진공관으로 특허를 취득하였다. Ambrose Fleming이 발명한 열전 다이오드에 제3의 전극인 그리드를 장치하여 음향 시그널을 전자의 흐름과 동조시킬 수가 있었다. 그는 이 새로운 튜브를 오디언(Audion)이라고 불렀는데 오디언으로 신호를 증폭할 수 있음도 발견하였다. 이 기초적인 미국의 특허품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음향 앰프 개발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였다.


             

              ========================================

                             1910년

 

Leon Gaumont는 파리에 있는 구몽성에서 4000명의 군중이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음량의 크로노폰(Chronophone) 시스템을 선보였다. 그는 이글폰(Eaglephone)이라 부른 라우드스피커를 스스로 설계하여 이용하였다. 이 장치는 이중분배기를 통하여 압축공기를 라우드스피커 안으로 방출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라모폰 기록량의 한계 때문에 녹음 가능한 가장 긴 영화 필름의 길이는 200ft 밖에 안되었다. 당시에는 초당 16 프레임을 투사하였다.

 

 

 

              ========================================

                             1914년

미국기술협회에서 발행된 활동사진에 대한 백과사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 그라모폰은 아직 완벽하지 못해서 자연의 작은 소리를 녹음할 수는 없고 인간의 목소리가 녹음의 한계인 듯 하다. 유성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대화를 녹음하고 다음에 영상을  녹음에 맞추어야 한다. 이러려면 배우들은 자신들의 배역을 두 번 연기할 수 있도록 잘 숙련되어야 한다.”     


 

              ========================================

                             1916년

미국의 벨전화기연구소, 웨스턴전기회사나 독일의 지멘스, 할스케 같은 몇 몇 회사가 오디오 앰프를 만들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라우드스피커의 개발 필요성을 대두 시켰다. 첫 번째 작품은 전화기 기술자에 의해서 수화기에 적용되었는데 진동수반응이 좋지 못하고 감도도 떨어졌다. 역시 예일대학교를 나온 Theodore Case는 누구보다도 먼저 유성영화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계적인 문제를 잊어버리고 영화 자체에 몰입하도록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Case는 Forest로부터 3개의 무대용 앰프를 구입하고 Forest와 함께 포노필름(Phonofilm)이라 부르는 필름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포노필름은 녹음을 위해 이오라이트(Aeolight)라 불리는 글로우 방전관을 이용한다.


 

              ========================================

                             1923년

Case와 Forest는 그들의 시스템을 브로드웨이의 리볼리 극장에서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선을 보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재생음은 대중들에게 인상을 줄만큼 충분히 좋지를 못했다.  당시에 라우드스피커 시스템을 설계한 음향기술자는 1차 대전 때 적의 항공기를 탐지하기 위해 혼을 개발했던 Stewart 교수이다.  그는 음향도파관을 발명했고 음향의 지향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여러 개의 혼 다발을 스크린 위쪽에 설치하여 강당의 여러 부분으로 소리가 전파되도록 하였다. 구동장치는 당시로서는 최신 아이디어인 균형 전기자를 갖춘 진동판 형태였다. 불행히도 이들 구동자도 감도가 좋지 못했고 진동수 응답도 전기자 공명의 양단에서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이 시스템으로는 여성과 남성의 음성을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

                             1925년

Case와 Forest는 결별했으나 Case는 계속해서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20 프레임씩 분리해서 소리의 첫머리를 영상의 첫머리에 맞추도록 설계하였다. 같은 시기에 제너럴 전기회사에 근무하는 Edward Kellogg와 Chester Rice는 처음으로 자석내에서 전기적으로 동작하는 코일형 콘 라우드스피커를 발명하였다. 이 라우더스피커는 이전 것들에 비하여 음질이 아주 뛰어났기 때문에 곧바로 널리 사용되었다. Kellogg는 라우드스피커에서와 같이 다른 방면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예를들어 활동사진의 고음질화, 전기적인 픽업, 기계적이고 광학적인 시스템에 대한 발명과 개선을 통하여 107개의 특허를 받았다.

 


              ========================================

                             1927년

Case는 장차 무비톤(Movietone)이라 불려질 그의 음향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폭스 스튜디오와 손을 잡았다. 스튜디오의 음향을 개선하기 위해 방금 도착한 Edward Sponable은 적절한 영사와 음향의 투과가 용이한 다공성 스크린의 사용을 제안하였고 곧바로 채택되었다. 이로서 Gaumont가 제안했던 대로 라우더스피커를 스크린 뒤에 놓을 수 있게 되었다. 같은 해에 벨 전화기연구소의 Wente와 Thuras는 동작코일로 구동되는 진동판 혼라우더스피커와  축전지로 에너지를 보강하는 강력한 스피커를 만들었다. 이들 스피커는 음향 파워 효율을 25% 정도 높이고 음질도 향상되었다. 당시의 앰프는 2 와트의 출력을 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는 아주 중요하다. 구동장치를 지수적으로 단면적이 증가하는 혼에 부착함으로써 스크린 뒤의 공간에 맞추어 혼을 휘어서 설치할 수 있으며 두 개 이상의 다중 발음부인 쓰로트를 혼에 연결하여 출력을 증대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들 라우드스피커의 원형은 웨스턴전기회사의 원판형 시스템의 일부로서 10월 와너(Warner) 극장의 개장기념 공연에서 째즈 가수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

                             1928년

째즈 가수의 행사로 인하여 소리의 재생문제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기업들도 그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웨스턴 전기는 원판형과 필름형 시스템을 모두 채택한 영사기를 제안하였다. 반면에 미국의 알씨에이, 덴마크의 피터슨, 프랑스의 구몽, 영국의 칼리, 독일의 크랑필름 회사들은 필름형 시스템에 매달렸다. 이 시기에 소리 재생의 개선을 위해 영사기도 매초 16프레임에서 24프레임으로 바뀌었다.

 

 

 

              ========================================

                             1929년

벨 전화기연구소는 저진동수 영역으로 확대된, 큰 쓰로트를 부착한 고효율의 콘형 라우드스피커를 만들었다. 완전히 새로운 정전기형 라우드스피커가 시카고필름에 의해 개발되어 몇 몇 영화관에 사용되었다. 이 스피커는 고음질이면서 왜율도 낮았지만 저음의 재생이 결여됐다. 또한, 독일에서는 Vogt와 Engl이 넓은 영역의 진동수에 반응하는 정전기형 라우드스피커를 만들기 위해 세 가지 서로 다른 크기의 스피커를 사용하였다.


 

              ========================================

                             1931년

녹음의 진동수 응답을 개선하기 위해 라우드스피커를 개량하는 많은 작업의 시도가 있었다. 대부분의 제품들이 고음과 저음부의 재생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들 진동수 영역을 보상하기 위해서 극장용 앰프에 이퀄라이저를 장치하기도 하고 또한, 새로운 진공관이 개발되어 8와트의 출력을 낼 수 있게 되었다.


3000Hz 이상의 고음을 효율적으로 방사하기 위해서는 작은 혼형 라우드스피커가 필요함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사실로 인하여 혼의 표준 크기가 사용되게 되었고 그 결과 현저한 개선이 이루어졌다. 고음부를 해결한 다음에는 300Hz 이하의 저음부 재생인데 그 해답은 Kellogg의 동작코일을 강체로 만든 큰 배플에 붙여 해결하였다. 이런 3단자 구성의 형태가 웨스턴 전기회사의 전 가청영역 시스템이나 알씨에이(RCA)의 고음질 시스템의 기초가 되었으며 영화관에도 곧 사용되었다.


영화관의 음향시스템이 개선됨에 따라 사운드트랙의 배경소음이 특히, 원래의 소리가 약할 경우에 성가신 것으로 대두되게 되었다. 일찍이 1927년에 Sponable이 이 문제를 알아채고 그의 생각을 웨스턴 전기회사에 그 가능한 해결책과 함께 전화로 연락했으나 1931년에 와서야 소음을 제거하기 위한 장비가 제조되었다.

 

              ========================================

                             1934년

벨 전화기연구소는 그들의 새로운 라우더스피커를 차례로 선보였다. 이에 자극을 받은 엠지엠(MGM)의 Douglas Shearer가 처음으로 극장용 라우더스피커의 개선을 시작했다. 그는 실험용 필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대부분은 이스턴 서비스 스튜디오들 중의 하나인 Mr RO Strock에서 녹음되었다. 몇 해에 걸쳐 100만 피트를 녹음 했는데 이 필름들은 벨 전화기연구소에서 주의깊게 원판과 대조하며 연구되었지만 결과로 인정할 만한 어떤 성능의 표준치를 찾지는 못하였다.

 

              ========================================

                             1936년

 

MGM의 Shearer는 저음영역을 콘형 작동코일로 구동되는 나무로 만든 큰 혼으로 발생시키고, 고음영역은 진동판형 동력학적 구동부로 작동되는 작은 칸으로 나누어진 혼으로 발생시키는 2단자 혼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500Hz 경계의 고음영역과 저음영역 통과필터를 장착한 수동형 크로스오버를 사용하여 두 라우더스피커로 음을 분류하여 입력시키는 방법이다. 이 라우더스피커는 40에서 10,000Hz까지 영역에서 균일하게 반응하며, 지향성을 조절할 수 있고, 강한 음향 파워를 낼 수 있고 효율도 높았다. 그때까지는 무시되었던 재생용 앰프의 잡음이 이제는 제거해야만 할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스피커시스템이 만들어지므로써 영사기의 불안정한 재생이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로써 새로운 축소형 필름감기가 만들어져서 영사기의 불안정성이 많이 개선되었다. 또, 야외에서 영화를 상영해야하는 필요성 때문에 운반용 영사기가 만들어졌다.

  

 


              ========================================

                             1938년

MGM사는 Shearer의 혼 시스템으로 기술부문 아카데미상을 수상했고, 웨스턴 전기회사는 극장용 스피커를 재정비하기 위한 새로운 음질표준화 시스템인 미로포닉(Mirrophonic)에 Shearer의 혼 시스템을 채택하였다.


어째든 수 천명의 기술자들은 좀 덜 비싼 이퀄라이져로 그럭저럭 장비를 구성하여 사용하였다. 그런데 한 기술자는 연주회장에 오히려 그래픽 이퀄라이져와 유사한 가변 음조 조절기인 ‘황금 귀’를 장치하였다. 그는 앰프 시스템에 주파수 보정기를 설치한 견본품에서 최상의 결과를 얻음으로써 아주 만족해했다. 그러나 이 방법도 그렇게 최고로 만족스러운 것은 못되었으니 그 이유는 많은 극장들이 이퀄라이져 보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음향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활동사진 예술, 과학 아카데미 내에 극장용 음향장비의 표준화를 위한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주 촬영소에서 대화와 음악의 견본이 담긴 시험용 필름을 준비한 후, 여러 극장에서 반복 상영하여 최종적인 음향특성에 대한 결론이 내려졌다. 고진동수 응답의 한계는 7kHz이며, 이렇게 한계를 잡음으로써 고진동수 배경소음을 효과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었다. 이것이 아카데미곡선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그 후 거의 50년 정도 이용되었다. 그러나 이 결과는 단지 앰프의 출력에 대하여 측정된 전기적 곡선이었기 때문에 라우더스피커의 성능이나 극장의 음향적 특성에는 참작할 수가 없었다.

 


              ========================================

                             1940년대

아카데미 위원회는 수많은 크고 작은 극장의 음향효과의 차이에 대하여 특히, 잔향시간을 연구하는 계획을 추진하였다. 당시로는 정교한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잔향시간을 측정하기는 어려웠지만 곧 운반용 잔향시간 측정장비가 만들어졌다. 잔향시간 측정을 위한 음원은  여러 진동수성분으로 구성된 소리를 사용하였다. 여러 진동수성분을 포함한 음원을 사용한 이유는 정상파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측정 결과 각 극장마다 심각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였고, 이로써 왜 아카데미 커브에 잘 맞추어진 장비로 특정 필름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극장에서 소리의 차이가 나는지를 설명할 수 있었다. 위원회는 이러한 극장의 음향적 결함은 전자장비로 고쳐질 수 없으며, 경제적으로 결정적인 구조가 있는 것도 아니란 사실을 재차 밝혔다.


알니코(AlNiCo)와 같은 강한 영구자석을 이용하여 극장용 라우더스피커를 만들게 되었다. 이 스피커를 사용하므로서 기존의 왕왕대는 많은 야외용 스피커 장비들을 설치하는 귀찮은 일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하루밤에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야외용 쇼인 “환타지아”에서 사용되는 크고 많은 양의 장비가 아직도 많은 영화에서는 사용되고 있었다. 다른 좋은 소식은 KT66과 6L6, 영국의 PX25와 같은 새로운 진공관이 만들어져 앰프의 파워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게 된 것이다. 병렬 푸시-풀 방식으로 4개의 진공관을 사용하므로서 큰 극장에서 이용할 수 있는 60에서 80 와트의 음향파워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베를린 라디오에서 일하던 Braunmu"hl 과 Weber는 미세한 산화물 가루를 씌운 6.35mm의 종이 테이프에 소리를 녹음하였다. 그들 연구의 획기적 발전은 DC바이어스를 RP바이어스로 바꿈으로서 이루어졌는데 이로서 높은 배경 잡음을 실제로 제거할 수 있었다.

 


              ========================================

                             1950년대

크랑필름(Klangfilm)은 35mm의 자기테이프에 녹음하는 새로운 장비를 만들었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의 영화제작소나 공장들은 이 새로운 기술을 서서히 받아 들였다. 필름시스템의 고음영역의 반응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개선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맞추어 아카데미 커브도 보정되어야만 했다.


 

이런 일련의 기술적 개선은 다시금 더 나은 라우더스피커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회사인 알텍 렌징(Altec Lansing)에서 원하는 방향으로만 고음을 보낼 수 있는 지향성이 아주 강한 ‘만토레이(Mantoray)'라 불리는 HF 혼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스테레오를 구현하는 시스템에서는 중요한 문제이다. 웨스턴 전기에서는 구멍 뚫린 원판을 진동판 앞에 일정한 간격으로 기울여서 차례로 붙여 만든 음향렌즈라고 불리는 HF 혼을 생산했다. 이들 HF 혼 덕분에 상하로 분포한 발코니도 무대 앞에서와 같은 효과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오늘날 얼마나 많은 극장들이 발코니를 가지고 있는가?) 이전에 사용하던 알미늄 합금 진동판과 서스펜젼을 프라스틱으로 바꾸고, 알루미늄 보이스코일을 장착한 트위터를 사용하여 소리재생능력이 더 낫도록 개선이 이루어졌다.


알텍사는 또한 뒤쪽에 두 개 이상의 스피커를 단 새로운 저음역 인크로져를 만들었다. 앞 쪽의 공기가 저음역 소리를 확대시키도록 하였다. 하여튼 대부분의 극장들은 될 수 있는 한 장비들을 걸어두는 경향이 있었다.

 

 

              ========================================

                             1960년대

 

최근 십 년 동안 시네마스코프와 시네라마, 70mm 보급판에 다중녹음 자기트랙이 소개되었다. 극장용 라우더스피커는 직경 15인치의 두 개 저음스피커를 다양한 크기의 반사 캐비넷에 설치하는 것과, 입구를 여럿으로 나누어 놓은 다양한 크기의 고음역 혼으로 표준화가 이루어졌다. 큰 극장은 각 채널로 구동되고 후판 면적을 넓히기 위해 측면에 판을 댄 두 개의 저음역 캐비넷을 두 개 이상의 고음역 혼과 함께 사용하였다. 수동형 진동수 분할 회로는 아직도 사용되고 있었으며 크로스오버 진동수는 전형적인 500Hz 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진동수에서 라우더스피커의 응답율이 떨어지는데 이퀄라이져를 사용해서 보정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라우더스피커에 대한 연구가 많이 수행되지는 않았다. 그 주된 이유는 새로운 장비시장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다.

                                                       


              ========================================

                             1970년대

돌비(Dolby)연구소에서 영화음을 개선하기 위해 자기녹음에 성공적으로 적용되었던 A형 잡음감소 시스템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런던에서 시작된 Ioan Allen이 이끄는 팀이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마이크나 앰프, 필름레코더와 같은 장비들이 모두 10kHz를 넘는 진동수영역에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단지 작은 손실의 이퀄라이져가 재생응답에 필요하였다. 한계는 라우더스피커와 도처에 적용되는 아카데미 커브에 있었다. 나중의 아카데미 커브는 제거될 수 있었고, 라우더스피커는 효과적으로 좀 더 현대적인 것으로 교체되었다. 돌비는 핑크 노이즈(주어진 밴드영역에서 일정한 에너지를 갖는 연속적인 스펙트럼 노이즈) 발생기와 반응 커브를 보여주는 현대적인 스펙트럼분석기를 사용하였다. 광전지로부터 파워 앰프까지 모든 준비된 신호처리 전자장비와 함께 잘 조정된 27단계 1/3 옥타브 밴드 필터를 모든 영화 장비에 장착하였다. 돌비에 맞추어 코드화된 모노트랙 영화가 1974년 칸느영화제에 처음으로 출품되었고, 같은 해 늦게 토론토에서 열린 SMPTE 회의에서 돌비 스테레오(SVA)의 전시회가 있었다. 새로운 음 재생의 표준들이 성취되었고, 새로운 국제 표준이 영화의 세계화를 위해 준비되었다. 이 국제 표준은 ISO2969로 알려져 있는 것으로 돌비의 SVA제작물과 아카데미 커브에 맞추어진 예전의 필름, 자기녹음 필름, 새로운 디지털 시스템을 참작하여 결정되었다. 또, 국제표준은 극장과 실내에서의 재녹음을 위해서도 사용되도록 만들어졌다.


 

              ========================================

                             1980년대

돌비 스테레오 SR과 같이 돌비 연구소의 눈부신 업적에도 불구하고 자기 줄무늬를 사용하는 70mm 필름의 재생에는 아직 많은 문제가 남아 있었다. 몇 몇 촬영소에서는 저음역을  강조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지만 반면에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를 못한 것처럼 아직도 여러 가지 모니터링 시스템에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극장에서는 해당 촬영소에서 제공하는 주파수 시험용 필름을 사용해서 각 영화에 맞추어 정비를 해야만 했다.


영화 스타워스에 George Lucas가 출연할 때 그는 극장이 다르면 소리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의 기술고문인 Tomlinson Holman에게 무언가 이에 대한 해결책을 주문하였다. Holman은 모든 극장의 라우더스피커가 1940년대에 설계된 것으로 현재에는 앰프 파워가 제한이 없지만 당시에는 앰프파워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고효율로 만들어졌음을 발견하였다. 라우더스피커 유닛은 이미 저음역 응답이 개선될 수 있었고 고음역을 균일하면서도 높은 음압레벨에 대해 왜율이 적게 할 수 있었으며 또한, 크로스오버 회로의 불필요한 특성을 제거하였다.  대단한 처방이었다. 그 결과 돌비 신호처리된 소리와 청취자의 음감을 모두 참작하여 THX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


라우더스피커를 제대로 배열하여 만든 THX 시스템은 영화음에 수년간 경험을 쌓은 JBL에 의해 만들어졌다. 두 개의 15인치 저음역 스피커를 정면으로 나란히 두 개의 출구를 갖는 캐비넷에 붙이고 이 캐비넷을 큰 후판에 대고 스크린 뒤 10인치 떨어진 곳에 놓았다. 트위터는 후판을 통하여 앞쪽으로 나오도록 만들어진 혼으로 되었는 캐비넷의 위에 놓았다. 새로운 고진동 구동자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알미늄 대신 티타늄으로 개선하였고 균일하게 반응하는 새로운 혼을 만들었다.


가장 성공적인 것 중의 하나는 전기적인 크로스오버를 파워 앰프 이전에 설치하는 것이다. 루카스영화사는 이 크로스오버가 외부 조절없이 밀폐된 채 분배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안쪽에는 수동형 크로스오버에 관련되는 낙타등 반응현상을 제거하기 위해 크로스오버 주파수에서 6dB 강화시키는 단일 필터와 함께 보통 고음부와 저음부 통과필터, 고주파 영역 감도조절기가 들어 있다. 좀 더 섬세한 것으로는 저음역 구동코일 보다 스크린에서 더 뒤쪽에 트위터 구동코일을 놓는 문제를 보상하기 위해 저음역 스피커로 입력하는 신호를 지연회로를 이용하여 늦추는 것이다. 이 지연회로가 위상을 일치시킨다. 스테레오 파워 앰프는 각 채널마다 사용되는데 반은 고음 영역에 반은 저음 영역에 할당되므로 왜율없이 강한 음을 낼 수 있다.


THX 시스템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 라우더스피커의 아래 후판을 잘라내고 선택된 서브우퍼를 장치하여 저음역을 보강했다. 또, 연주공간의 음향을 완벽하게 재조사한 결과를 이 시스템에 적용하여 40Hz에서 16kHz 영역에 걸쳐 ISO의 2969 표준에 맞추었다. 처음으로 THX시스템을 설치한 곳은 영국 레스터의 워너(Warner) 극장이고, 얼마 안되어 엠파이어(Empire)극장에도 설치되었다.


 

              ========================================

                             1990년대

 

많은 극장이 설립되어 라우더스피커의 시장이 크게 확대되는 바람에 지금은 많은 극장에서 JBL 스피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돌비에서는 1991년에 43mm 영화에서 사용하는 디지털 시스템인 돌비 SR.D를 만들어 그 뒤 2년 동안 판매했다. 소니가 1993년에 오데온(Odeon) 레스터 광장에서 디지털 시스템인 SDDS를 실연하였다. 비록 제품을 곧바로 설비장치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긴 하지만 소니제품의 헤드와 신호처리기는 기존의 사용기기들과 서로 함께 사용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1993년 9월에 5층 건물인 워너 웨스턴 극장이 9개의 스크린과 두 개의 THX 시스템, JBL 라우드스피커로 단장하여 다시 문을 열었다.


가정용 THX는 비록 음향조건을 따르지는 않지만 라우더스피커를 포함한 모든 장비에 대한 상세내역이 주어진다. 다음 세기에는 돌비의 Pro-Logic과 THX가 거실에 놓여질 것이다. 유성영화에 대한 상업적인 미래가 없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누구일까? 답은 1926년의 Thomas A. Edison이다.  우리는 ‘아주 작은 목소리’의 시대로부터 먼 길을 돌아보았다.


                                                                         John Aldred


'소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양 음계이론  (0) 2011.11.11
음성분석기-프라트(PRAAT)  (3) 2011.07.17
목소리(VOICE)의 발성 원리  (2) 2011.04.05
노인성 난청(PRESBYCUSIS)  (0) 2011.03.30
귀의 구조와 청각  (2) 2010.12.28
Posted by 다재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