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는 철학과 문학이 융성한 반면, 로마는 실용성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건축과 토목이 크게 발달하였다. 건축물로는 콜로세움이나 판테온 신전이 유명하다. 하지만 로마를 대표하는 산업은 토목이다. 현재 남아 있는 로마를 대표하는 토목 유적으로는 수로와 도로를 들 수 있다. 먼 지역에서 로마로 물을 끌어들이는 수로의 정밀한 경사도 유지는 현재의 기술자가 보아도 경이로울 지경이다. 로마의 도로 설계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있다.  '세상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가 그것이다. 로마시대의 유럽 주요 도시의 골목이나 주요 도로는  지금도 유럽 도시에서 볼 수 있듯이 돌을 바닥에 깔았다.

사진 1. 로마시대의 수레[https://somerni.tistory.com/22]

 이렇게 만들어진 도로 위로 많은 물자, 농수산물 등을 실은 수레가 교통체증을 유발할 정도로 빈번히 왕래하였을 것이다. 이때 로마시대의 수레는 사진 1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림 1을 보면 수레바퀴를 나무로 만들고 그 수레바퀴를 쇠로 된 둥근 테두리로 둘렀다. 나무는 쉽게 마모되기 때문에 마모 방지를 위해 쇠 테두리를 둘렀던 것이다.  

사진 2. 폼페이의 도로

 1748년부터 화산재에 묻혀있던 폼페이 발굴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폼페이는 로마의 휴양 항구도시였다. 서기 79년 8월 24일에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6m 화산재에 묻히는 바람에,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화석 도시가 되고 말았다. 2000명 정도나 희생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사진3 콜로세움 앞 도로

 폼페이에 가면 말과 사람이 다니던 길과 수레가 다니던 길을 볼 수 있다. 폼페이의 도로 사진 2는 전형적인 도로석으로 마감된 사진 3과는 다르다. 폼페이 도로는 크기가 제 각각인 자연석을 아귀 맞춤식으로 바닥 마감하고 있다. 사진 2에서 왼쪽 사진은 말이나 사람이 다니는 길이고, 사진 2의 오른쪽 도로는 수레가 다니던 길이었다. 수레바퀴 자국을 보면 수레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수레바퀴의 자국을 보고 있노라면 참 많은 수레가 왕래했겠구나 싶고, 한편으로는 수레의 크기에도 어떤 규격화가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런 표준화 덕분에 사진 2의 오른쪽에서 보는 바와 같이 수레바퀴 자국이 기차 레일처럼 나란히 깊게 파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로마에서는 수레가 다니는 도로의 폭을 1.2m로 규격화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폼페이의 수레 바퀴 자국을 보고 있노라면 말발굽 소리, 수레 삐그덕거리는 소리, 수레바퀴의 쇠테두리가 울퉁 불퉁한 돌과 바퀴 자국의 홈에 부딪히고 갈리고 하면서 '따그닥~딱', '덜커덩~삐그덕', '쉬익쉭~끼익'하는 소음이 굉장했을 것으로 상상된다.  

 

    --------by  Dajae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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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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