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왕에게서 얻어온 돼지가 왕건이 태어날 집터를 잡아 주었다. 이때의 돼지는 풍수도사다. 단 한번 양택을 잡아주고 돼지는 계속 먹는 일에만 몰두해 왔다. 돼지는 일하지 않고 평생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으니 사람들의 부러운 대상이다. 돼지는 배고프면 쉴 사이 없이 꿀꿀거려서 먹을 걸 재촉하고 배가 부르면 누워서 잠만 잔다. 배부른 게으름뱅이. 가히 게으른 자들이 꿈속에서도 사모할 만한 존재이다. 그러니 실제로 꿈속에서 돼지를 보면 좋은 꿈이라고 해몽한다. 더욱이 돼지는 한 번에 새끼를 많이 낳기 때문에 풍요를 꿈꾸는 농부나, 번창을 꿈꾸는 사업가의 선망의 대상이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돼지 돈(豚)을 좋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돼지는 재물을 뜻한다. 그러나 돼지를 무턱대고 칭찬할 수만은 없다. 돼지는 지저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돼지의 다복성을 너무 흠모한 나머지 돼지와의 동질성 유지를 위해 일부러 지저분하게 생활하는 사람도 있다. 지저분해야 돼지처럼 복을 받아 돈이 굴러 들어온다고 믿는 것이다. 돼지가 지저분하게 사는 것은 돼지우리가 좁고 주인이 제때에 청소해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돼지들은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돼지의 특성 중에 하나는 저돌성이다. 화가 날 때 물, 불을 가리지 않고 직선적으로 달려드는 돼지는 아무도 말릴 수 없다. 이런 성질은 돼지의 시조로 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옛날에 아프리카의 한 코끼리 무리의 리더가 65세의 나이가 되어 무리를 이끌던 중에 죽었다. 후계자를 정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원로회의에서 새로운 리더를 뽑기 위한 규칙을 만들어 발표했다. 언덕위의 커다란 바오밥나무를 쓰러트리는 코끼리를 리더로 뽑기로 하였다. 도전자격은 20세에서 45세 사이의 암수코끼리로 제한했다. 이로써 어느 날씨 좋은 6월에 새로운 리더를 뽑기 위한 시합이 벌어졌다. 아침 10시부터 자격이 맞는 코끼리 31마리가 도전했으나 나무를 쓰러트린 코끼리는 없었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할 판이었다.

그 때 덩치가 보통 코끼리보다 훨씬 작은 어른 코끼리가 앞으로 나섰다.


"내가 한 번 도전해 보겠다."


강한 의지로 단호하게 도전장을 냈으나 다른 코끼리들이 어림없다는 태도로 시큰둥했다. 하지만 도전자격은 합당했기 때문에 도전 기회는 부여됐다. 이 최종도전자 코끼리는 나이를 먹어도 키가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했다. 그래서 무리속에서 많은 놀림과 왕따를 당해 왔던 과거를 이번 기회에 보상받고 싶어졌다. 키작은 작은 덩치의 코끼리는 결심했다. '죽기 아니면 까물어치기다. 내 서러운 코끼리의 생을 리더로써 보상 받아야 겠다. 언젠가는 죽을텐데 오늘 여기서 죽던지, 리더가 되던지 양단 간에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 출발신호가 떨어지자 작은 코끼리는 가슴속의 열등감까지 모두 부숴버리려는듯이 맹렬하게 나무를 향해 일직선으로 돌진했다. 


"꽈~아~앙."


그 때껏 그렇게 큰 소리가 나도록 부딪힌 코끼리는 없었다. 나무도 가장 많이 흔들렸다. 하지만 나무는 쓰러지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목숨을 걸어도 세상에는 안되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 문제는 코끼리였다. 너무나 세게 나무에 부딪힌 나머지 머리에 피가 흘러 피범벅이 된채로 기절하고 말았다. 5일 동안을 언덕위에 누워 있었다. 문제는 키작은 코끼리가 의식을 되찾아 깨어났을 때 나타났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미 코끼리가 아니었다. 그나마 작았던 코는 압축된 채 원래대로 되돌아가지 않고 주름잡힌 짧은 코가 되어 있었고, 작았던 상아마저 뒤로 젖혀 있었다. 다시 말해서 코는 영락없는 돼지코가 되었으며 상아도 볼품없이 휘어진 이빨에 불과했다. 결국은 코 떨어진 코끼리인 '끼리'가 된 것이다. 끼리는 무리를 떠났다.


 끼리는 고향에서 먼 곳인 유라시아 지방에 정착했고 자연스럽게 멧돼지의 조상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멧돼지의 시조는 코끼리로부터 유래했던 것이다. 또한 시조가 나무를 향해 돌진하던 직선 공격성이 유전되어 멧돼지들은 아직도 저돌(猪突)성을 갖게 된 것이다.  ㅎ ㅎ


    ---------- by  Dajae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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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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