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음계이론

소리이야기 2011. 11. 22. 01:24

음의 협화

  BC 6세기에 그리스에는 피타고라스가 살았다. 그는 자연을 살펴 본 후에 ‘만물(萬物)의 근원(根源)은 수(數)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자연의 변화는 정성적, 정량적인 관계로 변한다는 사실을 표현한 것으로 자연법칙을 함수로 표현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함수(function)의 개념은 17세기 프랑스의 르네 데카르트에 의해 정립된 것이기는 하지만...

 하여튼 피타고라스의 자연관에 큰 힘을 보태준 사실이 현의 진동이다. 현의 진동주파수는 공기 중으로 동일한 소리주파수로 전파되는데 현의 진동주파수는 현의 길이에 반비례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소리 예술인 음악이 현의 길이 즉, 수치에 근거함을 발견한 것임으로 어찌 기쁘지 않았겠는가.

 피타고라스는 그림과 같은 공명통을 갖춘 단일코드를 동시에 튕겨 현의 길이가 단일한 정수비일 때, 음의 협화 즉, 어울림이 잘 일어나고 복잡한 비(比)일 경우 협화가 잘 일어나지 않음을 발견하여 피타고라스 음계를 만들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 것이다.

 

 


 즉,    L1:L2=1:1인 경우 동시에 두 현을 튕겨 발생하는 두 음(f1:f2=1:1)의 어울림은 완전 1도 음정,

         L1:L2=2:1인 경우 동시에 두 현을 튕겨 발생하는 두 음(f1:f2=1:2)의 어울림은 완전 8도 음정,

         L1:L2=3:2인 경우 동시에 두 현을 튕겨 발생하는 두 음(f1:f2=2:3)의 어울림은 완전 5도 음정,

         L1:L2=4:3인 경우 동시에 두 현을 튕겨 발생하는 두 음(f1:f2=3:4)의 어울림은 완전 4도 음정,

         L1:L2=5:4인 경우 동시에 두 현을 튕겨 발생하는 두 음(f1:f2=4:5)의 어울림은  장 3도 음정,

         L1:L2=6:5인 경우 동시에 두 현을 튕겨 발생하는 두 음(f1:f2=5:6)의 어울림은  단 3도 음정,

         L1:L2=5:3인 경우 동시에 두 현을 튕겨 발생하는 두 음(f1:f2=3:5)의 어울림은  장 6도 음정,

         L1:L2=8:5인 경우 동시에 두 현을 튕겨 발생하는 두 음(f1:f2=5:8)의 어울림은  단 6도 음정,

등 등이 된다는 것이다.(f1, f2 는 각 각  L1, L2  현을 튕겨 발생하는 소리의 주파수), 

 피타고라스 순정율 5음음계는 완전음정으로 만들어졌고, 피타고라스 7음음계는 어울림이 좋은 완전음정과 장, 단 3도 음정의 음으로 만들었다.(참조_서양 음계이론(http://soryro.tistory.com/97)) 



국악음계

  1493년 성종24년에 성현, 유자광, 신말평, 박곤 등이 음악의 전승이 단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저술한 악규집인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의하면, 국악의 음계는 황종율관을 기준으로 삼분손일(三分損一)과 삼분익일(三分益一)을 반복 적용시켜 12율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율관을 만든다 했다. 이를 삼분손익법(三分損益法)이라 한다.

 국악의 음계는 대나무 율관의 한 쪽을 왼손 바닥에 대고 세운 후, 위쪽 열린 주둥이에 입술을 대고 불 때, 공기기둥의 공명진동으로 발생하는 소리의 높이를 음계(Notes)로 만들었다. 이때 율관에서 나는 소리의 높이는 현에서와 같이 율관 길이에 반비례한다.

 삼분손일이란 1/3의 길이를 제거하는 것이고, 삼분익일이란 1/3의 길이를 더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황종율관의 길이를 L이라 할 때 삼분손일을 적용하면 (2/3)L의 임종율관, 임종율관에 삼분익일을 하여 (8/9)L의 태주율관, 태주율관에 삼분손일을 하여 (16/27)L의 남려율관, 남려율관에 삼분익일을 하여 (64/81)L의 고선율관, 고선율관에 삼분손일을 하여 (128/243)L의 응종율관, 응종율관에 삼분익일을 하여 (512/729)L의 유빈율관, 그런데 유빈율관을 삼분손일하면 황종율관의 반(半)의 길이보다도 작아지기 때문에 그 2배 길이인 (2048/2187)L을 대려율관으로 정하고, 대려율관에 삼분손일을 하여 (2/3)(2048/2187)L의 이칙율관, 이칙율관에 삼분익일을 하여 (8/9)(2048/2187)L의 협종율관, 협종율관에 삼분손일을 하여 (16/27)(2048/2187)L의 무역율관, 무역율관에 삼분익일을 하여 (128/243)(2048/2187)L의 중려율관이 만들어 지며, 중려율관에 삼분 손일을 하면 황종율관의 (1/2)L인 청황종 율관이 만들어져 한 옥타브(octave) 내에 12율관이 완성된다. 이들 율관을 한쪽을 막고 불어서 나는 소리를 12율음이라 한다.

 12율음의 주파수비는 길이에 반비례함으로 12율관의 길이의 역수비로 구할 수 있으며 그 율명과 주파수비를 [표1]에 주었다. 따라서 황종음의 표준음고(기준주파수)만 주어지면 나머지 11율음의 음고(주파수)를 결정할 수 있다. 가장 간단하게는 황종율관의 길이를 알면 그 진동음을 측정하여 주파수를 옛 음악에 맞추어 국악을 정비할 수 있으나 황종율관에 대한 유물이 없고, 황종척에 대한 여러 해석적 오해가 있으며, 황종척을 곡식인 검은 기장 알갱이를 기준으로 삼다보니 재현하기도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옛 국악을 분석하여 기본음을 설정할 수도 있으나 동일한 곡의 연주에도 개인적인 편차가 심하고, 악기도 자연물인 대나무를 사용하다보니 제각기 굵기와 길이가 달라 악기의 지공의 크기, 위치가 달라져 악률의 기준을 잡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이에 국립국악원에서는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많은 논의와 연구 및 측정을 거쳐 아악의 황종음의 주파수를 259Hz로 결정, 1991년 문화의 날 표준화 선포식에서 공표하고, 민속악인 향악의 황종음 높이를 311Hz로 2007년 11월 14일 공표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이들 기준음에 맞추어 삼분손익법으로 계산한 각 12율음의 주파수를 [표1]에 주었다.

 황종음의 기준주파수를 결정하는 것은 옛 날의 황종율관을 재생하지 못 할지라도 합의적 선택으로 해결될 수 있다. 단, 옛 국악의 황종음과 차이가 심하면 음높이가 변하여 옛 악보를 변형시킨 상태의 연주가 행해지게 된다. 국악기도 다시 제작해야하고, 연주자의 음감에 대한 재교육도 이루어져야 한다. 애석하게도 현재 향악 황종음의 높이 311Hz는 서양의 평균율음계의 한 음계인 Eb음 높이로 선택하여 결정한 것이다. 국악은 국악대로 여러 근거에 입각하여 표준음고를 결정하면 될 것을 굳이 서양음고에 맞춰 결정한 것은 줏대없는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럴 근거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311Hz에 맞추어진 음으로 국악기를 만들거나 국악을 연주하고, 교육하는 곳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은 예전과 변함없이 악기를 만들고 국악을 교육시키며 국악을 연주하고 있다. 그러므로 표준음고와 현행 국악계의 움직임은 따로 겉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철저한 교육과 악기제작, 연주를 표준음고에 맞추던가 아니면 표준음고를 현행 악기 연주에 맞추던가 해야 할 일이다. 

 

 

 

 

 [표1]에는 12율음 중에서 주파수비가 간단한 정수비를 갖는 [황종, 태주, 고선, 임종, 남려]를 각 각  [궁, 상, 각, 치, 우]로 이름붙인 계명(階名)도 주어져 있다. 이는 5음음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동양사상의 음양오행설과 많은 연관성을 갖고 있지만 여기서는 서양의 피타고라스 5음음계와 비교해 보고자 한다.

 

 


 [표2]를 보면 삼분손익법에 의해 만들어진 국악음계와 어울림이 잘되는 완전음정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피타고라스 5음음계와 F와 고선만 다를 뿐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이는 국악음계도 일종의 순정율음계임을 부인할 수 없게 한다. 단, [표1]에 중려음을 (각)으로 기록한 것은 서양음계입장으로 주장되는 5음음계의 이론(異論)을 나타낸다.

 

 하여튼, 삼분손익법으로 결정된 국악음계는 엄밀히 순정율 음계이면서도 서양의 순정율음계와는 또 다른 음계이다. 더욱이 평균율음계와는 확연히 다른 음계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국악음계에 대하여는 다른 특정음계 이름이 부여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조선율 음계]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좋으리라.


 [그림2]에 12율음을 피아노 건반에 대응시켜 나타냈다. 이를 보면 황종음에 반음계반음 2187/2048 만큼 높은음이 대려, 태주의 반음계 반음 높은음은 협종, 고선에 대한 반음계반음 높은음은 중려, 임종과 남려 보다 각 반음계반음 높은음은 이칙, 무역이다. 그러나 대려와 태주, 협종과 고선, 중려와 유빈, 이칙과 남려, 무역과 응종 사이에는 각 각 다른 반음관계를 갖는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서양음계는 현의 진동음의 협화를 기준으로 만들어지고, 국악 음계는 삼분손익법으로 만든 관내의 공기기둥의 진동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지만 오음음계를 살펴보면 유사하되 12율음을 살펴보면 큰 차이를 보인다. 하여튼 서양음악은 현악기인 피아노가 기준이요, 국악음악은 관악기인 대금이 기준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대금은 향악기이기 때문에 아악을 중심으로 정비되고 전승된 국악의 기준악기가 되기 곤란한 점이 있다. 국악은 향악(鄕樂)과 아악(雅樂)으로 나뉘는데 향악은 삼국시대 이 후로 전해져오는 음악이나 자생적인 음악을 말하며, 아악은 12세기 고려 예종 때 중국에서 들어온 음악으로 주로 궁중에서 연주되던 음악이다. 향악은 민속악(民俗樂), 아악은 정악(正樂)이라고도 불렸는데 악학궤범은 궁중악인 정악에 대한 악규집이며, 삼분손익법은 12세기에 중국의 채원정이 쓴 율려신서(律呂新書)를 참조로 작성된 책이다.

 세종 때 박연은 황해도 해주산 검은 기장알로 황종척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12율관을 만들었으나 중국의 음보다 높아 재 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에는 저음은 임금의 소리요 위엄을 나타낸다 믿었던 시절이라 황종음이 가장 낮은 음이 되도록 음계를 만들었다. 따라서 기준음고의 문제는 중요하게 다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절이 평화로울 때는 저음에 치우친 음악이 유행하고, 전쟁과 혼란의 시대에는 음악도 고음쪽으로 편중되었던 바, 동양이나 서양이 모두 기준음의 변화를 보인다. 그러던 차에 20세기에 들어와 국제표준기구에서 서양음계의 A 기준음고를 440Hz로 결정하게 되고, 국립국악원에서도 아악의 표준음인 황종음의 높이를 259Hz, 향악의 황종음 높이를 311Hz(서양음계 Eb)로 선택하여 선포한 일은 음악의 정비 차원에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 본 바와같이 서양의 순정율 음계와 국악의 음계는 구별되는 음계이다. 따라서 국악의 고유한 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조선율 음계의 틀이 유지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아악 음계의 기본 정비틀인 삼분손익법을 그대로 향악에 적용할 충분한 근거가 부족하기는 하지만, 전한(前漢)의 사마천이 BC 1세기에 작성한 사기(史記)에서 황종율관 길이를 논함을 볼 때, 삼국시대부터 전해오는 향악도 중국음악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즉, 향악에 삼분손익법을 적용한 음계를 적용하는 것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래에 향악의 음계에 서양의 평균율음계화한 주파수를 부여하여 조바꿈을 자유롭게 하고, 서양악기와의 협연을 하기 쉽도록하자는 주장이 대두되고, 실제로 국악기를 서양음계에 맞추어 튜닝해서 협연을 하기도 하는 바 이는 참으로 우려되는 대목이다. 각 민족의 고유음악이야 말로 고유한 음율체계에 고유성과 정체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서양의 평균율 음계에 맞춰 제작한 국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서양음악에 새로운 종류의 악기만 제공하는 효과가 있을 뿐이라 할 수 있다.  또, 국악은 평조와 계면조 등의 한정된 변조곡만 작곡, 연주되어 온 바 앞으로 악조가 평균율화 된 변조곡을 많이 만든다고 국악이 더 활성화되는 것도 아니므로 고유의 전통 국악을 유지, 전승해 나가는 것이야 말로 더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다시말해서 국악음계를 서양의 평균율 음계화하고자 하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하겠다.

 만일 국악기를 서양악기화하고자 한다면 그 악기를 서양음계에 맞추어 제작하고 연주하되 이름을 달리 바꿀 것을 권하고 싶다. 양피리, 양대금, 양가야금, 양생황, 양중금, 양소금 등으로 말이다.         

                                                               ---------------  by       Dajae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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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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