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재헌 단상
계약연애 - 단상(36)
다재헌
2012. 12. 19. 18:33
두터운 잎사귀 달린 물푸레 나무 아래
무늬목으로 장식된 의자가 있다.
방금 고해 성사에서
그 여름날 욕정이 부른 후회를
먼지처럼 털어버린 늙은 화가는
밀려오는 침묵에 빠져든다.
그림의 배색으로 묻혀버린 과거의 여인
온정과 호소로 채워진 풍성한 가슴이
한 때 그를 위해 창을 열었다.
무너진 울타리 사이로 한마리 개는
머뭇거리며 광장에 들어 선다.
한 순간에 지나버린
열정과 광풍의 젊은 날
세월속에 버려진 그 여인의 초상화 속에
붉은 장미를 그려 넣는다.
창백한 얼굴에 주름을 타고 내리는
정중한 눈물.
조율되지 않은 피아노 소리일 망정
용서의 화음으로 듣기는 늙은 화가는
오는 어둠을 조용한 미소로 맞이한다.
------------------------------------ by 韻交(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