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가 늙어 80세가 되던 해에 사라(sara)나무 아래에서 입적하기 전에 다음과 같이 설법했다.

"아난다여! 오늘밤 자정 무렵 나는 열반에 들 것이다.  어느덧 인생의 황혼에 들었으니 이제 막을 내릴 때가 되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육신이 늙고, 병들어 사라지는 것은 모든 형상 있는 것들이 사라져 없어지는 것과 같다. 그러나 여래는 육신이 아닌 깨달음의 지혜이니. 내가 가르친 진리는 너희들과 함께 영원하리라. 모든 것은 덧없다. 게으름 피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석가모니의 삶은 지극히 단순하고 인간적이었다. 그는 깨달음을 통하여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고 그 깨우친 바로서 무지한 대중을 가르쳐 무명에서 밝은 빛의 세계로 인도하였다. 결국 인연에 의해 세상의 모든 사건과 일은 운행되는 것이며, 세상의 근본은 제행무상이니 욕심내지 말고 자비를 베풀어 모든 생명있는 것들을 죽이지 말고 공생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자연은 옛부터 있는 그대로 있는 것이며, 그 속에서 생명있는 것들은 인연에 따라 육도윤회하며 결국은 인간으로 태어났을때 깨달음을 얻어 즉, 성불하여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 해탈하면 부처의 세계에서 극락의 삶을 영원히 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한 생을 살 때 정진하여 깨달음을 얻든가 아니면 열심히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배우고 익히고 자비를 행함으로써 해탈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외의 교리나 다른 여러 부처를 내세우는 것은 교단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에서 나온 것이고, 지옥도 막무가내로 대중을 겁주어 교화하려 만들어낸 것이며, 석가모니를 교단의 시조로서 마치 힌두교의 신과 같은 반열에 올리기 위해 석가모니의 전생을 조작하고 신비로운 삶으로 바꿔치기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 행해졌다. 태어나자 마자 세상에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어떻게 외칠 수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말도 안된다. 교단은 석가모니 생전에 만들어졌는데  불교교단의 일원이 된자들은 그 이 후에 무지 몽매한 민중들을 상대로 기복을 앞세워 무위도식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에 교단이 만들어졌을 때 석가모니의 친척들이 대거 입단했다. 요즈음 가족회사와도 같다. 위 아난다도 석가모니의 사촌이고, 최초의 여승도 석가모니의 친척으로 석가모니는 여자를 제자로 두지 않으려 완강히 반대했으나, 오히려 다른 제자들이 적극 추천하여 강령을 만들어 규율을 지키는 조건하에 여승을 허락하였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그는 신이 아니다. 

 

 인연론도 석가모니의 최초 깨달음의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 실제 불교보다 오래된 힌두교에도 이런 인연설과 관련한 윤회를 인정하는 교리가 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는 인간 세상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인연설을 좀 더 넓고 깊게 확장시킨 것이고 이 부분이 그의 깨달음이었을 뿐이다. 당시로서는 큰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누군가가 저녁에 잠들기 전에 누워서 상상해 볼 수 있는 단순한 픽션일 수 있다. 아무튼 석가모니는 자연세계를 설명하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그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고뇌를 계속했고, 결국은 그에 대한 해답을 얻은 것이고 그를 대중에게 가르친 것이다. 당시에는 깨달음을 얻은자는 마치 현대의 정치적인 정당을 만드는 것처럼 교단을 만들고 그 교단을 차지하고 빼앗고 무너트리는 일들이 비일 비재 했다. 그런 속에서 그래도 불교가 융성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으로 말하면 글로벌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현장과 같은 인물을 통하여 대중을 이끌어 갈 정치적 이념이 필요한 나라들, 즉 당나라나 티벳으로 석가모니의 깨달음이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중국은 특히나 풍수지리 사상과 어울어져 산속 경치 좋은 곳에 절을 지어 깨달음을 배우고 익히면서 무위도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으로 산다는 것은 최고의 안전한 삶이었다. 그러기에 초기에는 귀족이 중으로 살았다. 그러나 나중에는 중으로 살기를 집념으로 가진자가 중으로 살았다. 그들은 절을 신이 사는 곳, 기복을 베푸는 곳으로 만들어야 했다. 의상이나 원효가 전국의 모든 절을 지은 것처럼 거짓말을 덧붙여 절의 고색창연함과 권위를 얻으려하는 속물적인 자세가 만연하고 그런 분위기들이 석가모니가 죽은 후로 석가모니를 과장되고 거짓되고 말도 안되는 전설로 치장하므로써 결국은 석가모니가 설령 미륵으로 세상에 온다손치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과는 너무나 먼 허상의 신격화에 기절해 죽을 만큼, 가상의 신비로 지은 옷을 불상에 입혀 놓았다. 의상이나 원효는 얼마나 재력과 위력이 대단했길래 가는 곳마다 지팡이를 꽂으며, 여기다 절을 지어라 하면 절을 지을 수가 있었단 말인가?  

 

 인연론은 초기 석가모니의 큰 깨달음이었으나 나중에는 무지한 대중을 체념시키고 운명론을 인정하게 하였다. 석가모니는 인연론을 중시하여 무욕과 자비로운 삶을 살도록 대중을 가르쳤는데 다시말해 적극적인 삶을 살도록 가르쳤는데 그 교단을 유지해야하는 무리들은 대중들의 피폐한 삶이나 복받은 삶이나 전생에서 지은 인연따라 이생에서 벌을 받던가 선행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다음 생에서도 잘 살려면 이생에서 착하게 살고, 중들을 공손하게 잘 대접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무기가 되어 버렸고 허무한 과장의 단초를 제공하는 주장이 되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허무 맹랑하고 개인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무시하고, 인간성 마저 증발시키는 주장이다. 전생에 대한 기억도 없는데 누군가의 잘못으로 지금의 삶이 고달프다라고 한다면 정말이지 억울하기 짝이 없다. 또, 내가 지금 생에서 착한 일을 열심히하여 죽은 후에 다음 생에 태어나 복받는다고 한들 나와 그놈이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석가모니의 깨달음과 가르침은 한 철학자의 깨달음과 다를 바 없다. 지속적인 추종자와 그 무리를 지속시키는 규율과 정치적 집단에 대한 이념제공, 대중을 속일 수 있는 속임수 교리와 이들이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시대적 배경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결국은 석가모니의 깨달음은 현대에 와서는 평범한 한 아이디어에 불과하나, 당시로서는 큰 깨달음이었고, 석가모니는 그 깨달음을 대중과 공유함으로써 그들의 삶이 좀 더 만족스러운 것이 되도록 기여하기를 바랬다. 그는 스스로 가르침의 교단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교단의 구성원들은 교단의 영속성을 위해 영리하게도 석가모니를 신으로 만들고, 그에게 기복하도록 대중을 이끌어 갔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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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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